‘부랴부랴’ 내놓은 투기 방지책…‘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칠 수준’ 지적

정순구기자

입력 2021-03-15 20:31 수정 2021-03-1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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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가 투기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공직자들의 투기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명 거래나 법인을 이용한 투기를 걸러내지 못하는데다 투기 가담자도 LH 직원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악화된 민심을 달래려 투기 방지책을 급하게 내놓다보니 대책이 보여주기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14일 발표한 투기방지책에는 LH 임직원이 내부 개발행위를 활용해 불법 투기를 하는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크게 △농지 취득 관리 대책 △실사용 목적 외 토지 취득 금지 △사업지구 지정 전 임직원 토지 전수 조사 △준법윤리감시단 설치 등이다. 이달 11일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 발표 이후 3일 만에 나온 대책이다. 하지만 대책 내용이 추상적이고 그나마 구체적인 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등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칠 수준’의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대책에서 농지 취득을 제외하면 투기방지책 대부분은 LH 임직원들에 한정됐다. 하지만 투기 의혹은 LH 전·현직 직원들을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시·도의원, 국회의원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토지 개발 정보를 알 수 있는 기관이 LH뿐인 것도 아니다. 실제 철도 도로 산업단지 등 다른 개발 사업에도 투기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전체 공직자의 투기를 걸러낼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땅 투기를 LH 직원들만 했다는 가정으로 방지책을 만든다면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LH의 모든 임직원을 상대로 실수요 이외 목적으로 토지를 취득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수요 목적을 판단하기 어렵거나 명확치 않을 때가 적지 않다. 지인을 통해 차명으로 거래하거나 법인을 세워 거래할 경우를 밝혀내기도 힘들다. 등기부등본 상에는 해당 공직자의 이름이 남지 않기 때문에 이런 투기 방지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정부는 LH에서 내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한 체계를 마련하고, 내부 정보 유출로 투기가 이뤄지면 외부인까지 처벌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LH에 그동안 감시 체계가 없어서 투기 의혹이 생긴 건 아니다. 2015년 땅 투기에 가담해 단기간 수천만 원의 차익을 거둔 직원은 감사 과정에서 경고 조치를 받는 데에 그쳤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투기에 관대한 조직 문화가 또 다른 투기를 낳는다”며 “직원들이 서로 투기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내부 투명성을 높이는 문화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농지 취득을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대책 역시 반쪽짜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투기우려지역의 토지거래 심의를 담당할 농지위에 지역 농업인과 주민, 시민단체 등을 참여시킬 계획이지만, 이들이 투기 의혹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서는 농지를 활용한 투기 방식이 부각됐지만, 주택 등 다른 유형의 부동산도 투기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토지보상 전문가든 “현재 드러난 의혹은 본인 명의로 투자한, 꼬리 중의 꼬리”라며 “현장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투기 방지책을 내놓지 않으면 시장에서 치밀하게 이뤄지는 투기 행위를 방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구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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