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개관 30주년…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산 역사

김기윤 기자

입력 2021-03-15 03:00 수정 2021-03-15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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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작곡한 김민기가 설립
김광석-뮤지컬 ‘지하철 1호선’ 등
척박한 공연계에 ‘든든한 텃밭’ 돼


뮤지컬 ‘지하철 1호선’ 3000회 특별 공연을 위해 2006년 3월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모인 역대 출연진. 김민기 학전 대표가 독일 원작을 각색한 이 작품은 1994년 초연됐다. 특별 공연에는 조승우 황정민 장현성 방은진 오지혜 등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동아일보DB
김민기 학전 대표
배울 ‘학(學)’에 밭 ‘전(田)’. 대학로에서 밭농사를 시작한지 올해로 어언 30년. 시간이 지나면 텃밭도 자리를 잡고 땅도 비옥해지건만, 유독 이 농사는 험하고 거친 길을 걸었다. 매번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도 아니고, 농사에 힘쓴 이들이 부농(富農)이 되지도 않았다. 척박한 한국 공연계를 닮았다. 남들이 “돈 안 되는 일”이라며 외면할 때도 이 텃밭은 꿋꿋하게 한국 문화예술계에 든든한 토양이 되었다.

1991년 3월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터를 잡은 학전(學田) 소극장이 15일로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번듯한 30주년 기념행사는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늘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해왔듯 학전은 13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어린이 뮤지컬 ‘진구는 게임 중’을 무대에 올렸다. 독일 그립스 극단의 ‘Flimmer Billy’를 학전 대표인 김민기 연출가가 직접 번안한 작품이다.

과거 서울대 문리대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 학내 식당에서 이름을 따온 학전은 ‘아침이슬’을 작곡한 김민기 대표가 설립했다. 학전이 들어선 1990년대 초는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 음악이 대중음악을 주도하면서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이들이 설 곳을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학전은 이들을 위한 라이브 무대를 제공해왔다. 학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극장 문화는 이후 홍대로 번져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밑거름이 됐다.

학전과의 인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고(故) 김광석이다. 이곳에서 1000회 공연을 열었고, 1991∼1995년엔 매년 라이브 콘서트도 했다. 2008년 그를 추모하는 ‘김광석 노래비’가 학전에 세워졌다. 매년 학전에선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도 열린다. 이 밖에 들국화 안치환 노영심 이소라 장필순 동물원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윤도현 성시경 장기하도 학전에서 노래했다.

국내 뮤지컬과 연극 역사에서도 학전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선보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원작을 김 대표가 번안한 작품이다. 소외계층과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작품은 원작자로부터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08년 11월 4000회 공연까지 배우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가 거쳤으며 2018, 2019년 특별공연도 학전에서 열렸다. 뮤지컬 ‘개똥이’ ‘의형제’ ‘모스키토’도 학전의 주요 레퍼토리다.

학전은 어린이극 최후의 보루로도 통한다. 입시교육과 TV, 뉴미디어만으로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김 대표의 철학이 반영됐다. “제가 힘들다고 그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집념으로 지금껏 어린이 공연을 지켰다.

개관 당시 김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여기는 조그만 곳이기 때문에 논바닥 농사가 아니다.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것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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