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1억… 한 실버타운 네가족의 기부 릴레이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 대전=지명훈 기자
입력 2021-03-15 03:00 수정 2021-03-15 05:52
90대 노부부 KAIST에 200억 상당 부동산 기부
이웃사촌 기부 영향받아
황해도에서 태어나 18세에 월남해 자수성가한 90대 사업가와 그의 부인이 KAIST 최고령 고액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물티슈도 물에 헹궈 쓸 정도로 평생 절약을 실천했지만 베푸는 데에는 아낌이 없었다. 부부의 기부에는 함께 거주하는 실버타운 이웃사촌들의 영향도 컸다. 같은 실버타운에서만 네 가족이 총 761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KAIST는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92)과 안하옥 씨(90) 부부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기부했다고 14일 밝혔다. 장 회장은 KAIST에 10억 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중 최고령이다.
장 회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혼자 힘으로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화장용 붓 등을 생산해 명품 화장품 업체에 납품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중국에도 공장 두 곳을 세우며 사업을 확장해 지금의 재산을 일궜다. 장 회장은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나니 우리 부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오른팔이 되어 주자고 자연스럽게 뜻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장 회장의 기부에는 경기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김병호 서전농원 회장, 김삼열 씨 부부의 영향도 있다. 김 회장 부부는 2009,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KAIST에 35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실버타운 주민이 KAIST에 고액을 기부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고(故) 조천식 한국정보통신 회장과 지난해 국가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수묵화 ‘세한도’를 기부한 손창근 씨도 김 회장 부부의 권유로 KAIST 고액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자신에게 인색했지만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고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고향 황해도에 남은 어머니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일을 생각하며 평생 휴지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끼고 또 아꼈다.
‘평생 모은 재산, 어디에 기부하는 것이 좋을까.’
누군가를 돕는 ‘오른팔’이 되고 싶었다. 고민하던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92)과 안하옥 여사(90) 부부는 한 동에 같이 사는 이웃 사촌 김병호 서전농원 회장과 김삼열 여사 부부에게 KAIST는 어떤지 물었다. 이들 부부는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KAIST에 350억 원을 기부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민 끝에 장 회장 부부는 이달 2일 KAIST를 찾아 교내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과 한국 과학의 미래를 본 장 회장은 그 자리에서 KAIST 발전재단 측에 “여러분을 제가 돕겠습니다”라며 기부를 결정했다.
이 부부의 KAIST 발전기금 약정식은 13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렸다. 장 회장은 “여러 기부처를 두고 고민했지만,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장 보람될 것이라는 생각에 KAIST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안 여사는 “부부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어 아주 즐겁고 행복하다. 기부가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 회장 부부가 기부한 부동산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580m²(약 175평) 대지와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의 빌딩으로 약 200억 원에 달한다. 약정식에 앞서 2일 빌딩 등의 명의 이전 절차를 모두 완료했다. KAIST 발전재단 관계자는 “장 회장 부부는 10여 년간 인재 양성을 위해 이웃의 김 회장 부부 기부금을 활용하는 KAIST를 지켜보며 결단을 내리셨다”고 배경을 전했다.
한 동에 사는 장 회장 부부와 김 회장 부부 외에도 이들이 사는 경기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는 ‘기부 천사’가 여럿 있었다. 2009년 기부를 가장 먼저 시작한 김 회장의 영향을 받았다.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총 16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고 조천식 한국정보통신 회장도 김 회장의 조언을 받은 실버타운 이웃 사촌이다. 지난해 국가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수묵화 ‘세한도’를 기부해 화제를 모은 손창근 씨도 김 회장의 권유를 받고 2017년 부동산 50억 원과 현금 1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장 회장 부부를 포함해 한 실버타운에서 네 가족이 총 761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이들이 사는 용인 소재 실버타운은 총 500여 가구(553가구)로 체계적인 첨단 의료서비스 등이 갖춰져 있어 자수성가한 기업인들 상당수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회장은 고 조 회장, 손 씨와 실버타운 내 다른 건물에 살아 별다른 교류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 회장의 기부 소식이 알려지자 ‘세한도’의 손 씨가 연락해 왔다. 장 회장은 “기부를 결정한 후 손 선생이 연락해 ‘좋은 선택을 하셨다’고 전해주셨다”고 말했다. 기부를 시작으로 새로운 ‘이웃’의 인연이 생긴 셈이다.
13일 비공개로 열린 장 회장 부부의 KAIST 발전기금 약정식은 안 여사의 생일(3월 15일), 장 회장의 생일(3월 17일)과 가까워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 장 회장은 “KAIST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KAIST가 세계 최고 대학으로 성장해 한국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현장에 참석한 KAIST 관계자는 “장 회장은 자신이 평생 일궈온 재산을 기부한다는 감격에 수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평생 모은 재산을 흔쾌히 기부해주신 장 회장 부부의 결정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기부자의 기대를 학교 발전 동력으로 삼아 세계 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 대전=지명훈 기자
이웃사촌 기부 영향받아
KAIST에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왼쪽)과 안하옥 여사. KAIST 제공
황해도에서 태어나 18세에 월남해 자수성가한 90대 사업가와 그의 부인이 KAIST 최고령 고액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물티슈도 물에 헹궈 쓸 정도로 평생 절약을 실천했지만 베푸는 데에는 아낌이 없었다. 부부의 기부에는 함께 거주하는 실버타운 이웃사촌들의 영향도 컸다. 같은 실버타운에서만 네 가족이 총 761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KAIST는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92)과 안하옥 씨(90) 부부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기부했다고 14일 밝혔다. 장 회장은 KAIST에 10억 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중 최고령이다.
장 회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혼자 힘으로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화장용 붓 등을 생산해 명품 화장품 업체에 납품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중국에도 공장 두 곳을 세우며 사업을 확장해 지금의 재산을 일궜다. 장 회장은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나니 우리 부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오른팔이 되어 주자고 자연스럽게 뜻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장 회장의 기부에는 경기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김병호 서전농원 회장, 김삼열 씨 부부의 영향도 있다. 김 회장 부부는 2009,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KAIST에 350억 원을 기부했다.
이 실버타운 주민이 KAIST에 고액을 기부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고(故) 조천식 한국정보통신 회장과 지난해 국가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수묵화 ‘세한도’를 기부한 손창근 씨도 김 회장 부부의 권유로 KAIST 고액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이웃사촌 노부부 4쌍 “KAIST 인재양성에 한마음” 6차례 기부
실버타운 이웃 761억 기부 릴레이KAIST에 기부한 기부자들. 왼쪽 사진부터 김삼열 여사와 김병호 회장, 윤창기 여사와 고 조천식 회장, 김연순 여사와 손창근 씨. KAIST 제공
자신에게 인색했지만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고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고향 황해도에 남은 어머니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일을 생각하며 평생 휴지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끼고 또 아꼈다.
‘평생 모은 재산, 어디에 기부하는 것이 좋을까.’
누군가를 돕는 ‘오른팔’이 되고 싶었다. 고민하던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92)과 안하옥 여사(90) 부부는 한 동에 같이 사는 이웃 사촌 김병호 서전농원 회장과 김삼열 여사 부부에게 KAIST는 어떤지 물었다. 이들 부부는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KAIST에 350억 원을 기부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민 끝에 장 회장 부부는 이달 2일 KAIST를 찾아 교내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과 한국 과학의 미래를 본 장 회장은 그 자리에서 KAIST 발전재단 측에 “여러분을 제가 돕겠습니다”라며 기부를 결정했다.
이 부부의 KAIST 발전기금 약정식은 13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렸다. 장 회장은 “여러 기부처를 두고 고민했지만,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장 보람될 것이라는 생각에 KAIST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안 여사는 “부부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어 아주 즐겁고 행복하다. 기부가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 회장 부부가 기부한 부동산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580m²(약 175평) 대지와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의 빌딩으로 약 200억 원에 달한다. 약정식에 앞서 2일 빌딩 등의 명의 이전 절차를 모두 완료했다. KAIST 발전재단 관계자는 “장 회장 부부는 10여 년간 인재 양성을 위해 이웃의 김 회장 부부 기부금을 활용하는 KAIST를 지켜보며 결단을 내리셨다”고 배경을 전했다.
한 동에 사는 장 회장 부부와 김 회장 부부 외에도 이들이 사는 경기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는 ‘기부 천사’가 여럿 있었다. 2009년 기부를 가장 먼저 시작한 김 회장의 영향을 받았다.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총 16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고 조천식 한국정보통신 회장도 김 회장의 조언을 받은 실버타운 이웃 사촌이다. 지난해 국가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수묵화 ‘세한도’를 기부해 화제를 모은 손창근 씨도 김 회장의 권유를 받고 2017년 부동산 50억 원과 현금 1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장 회장 부부를 포함해 한 실버타운에서 네 가족이 총 761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이들이 사는 용인 소재 실버타운은 총 500여 가구(553가구)로 체계적인 첨단 의료서비스 등이 갖춰져 있어 자수성가한 기업인들 상당수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회장은 고 조 회장, 손 씨와 실버타운 내 다른 건물에 살아 별다른 교류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 회장의 기부 소식이 알려지자 ‘세한도’의 손 씨가 연락해 왔다. 장 회장은 “기부를 결정한 후 손 선생이 연락해 ‘좋은 선택을 하셨다’고 전해주셨다”고 말했다. 기부를 시작으로 새로운 ‘이웃’의 인연이 생긴 셈이다.
13일 비공개로 열린 장 회장 부부의 KAIST 발전기금 약정식은 안 여사의 생일(3월 15일), 장 회장의 생일(3월 17일)과 가까워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 장 회장은 “KAIST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KAIST가 세계 최고 대학으로 성장해 한국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현장에 참석한 KAIST 관계자는 “장 회장은 자신이 평생 일궈온 재산을 기부한다는 감격에 수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평생 모은 재산을 흔쾌히 기부해주신 장 회장 부부의 결정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기부자의 기대를 학교 발전 동력으로 삼아 세계 최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 대전=지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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