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체계 개선해 암세포에 대항… “원격 전이 두경부암에 효과”

김상훈 기자

입력 2021-03-13 03:00 수정 2021-03-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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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스트 닥터]<29> 이윤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이윤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두경부암 분야에 면역항암제 원리를 적용해 치료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치료법이 암 세포가 원격 전이된 두경부암 환자의 치료에 큰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사람의 뇌 아래에서부터 쇄골 위쪽까지를 보통 두경부(頭頸部)라고 한다. 말을 하는 발성 기관(후두), 맛을 느끼며 음식 섭취와 관련된 일을 하는 기관(구강, 구인두, 침샘), 음식물을 삼키는 기관(하인두), 냄새를 맡는 기관(비강, 비인두)이 두경부에 해당한다. 이 기관들에 생기는 암이 두경부암이다. 두경부암은 한국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10대 암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사실 만만치 않은 암이다. 발견 시기가 늦어지면 생존율은 확 낮아진다. 물론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도 높고, 치료 효과도 좋다. 두경부암 분야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윤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44)를 만났다. 이 교수 환자의 60%가 두경부암이다.》

○ 바이러스가 원인인 구인두암 증가 추세

두경부암은 발생 부위가 다양해 종류가 꽤 많다. 혓바닥에 생기는 구강암, 목젖에서 목구멍 사이의 부위에 생기는 구인두암, 목구멍 안쪽 발성과 관련이 있는 곳에 생기는 후두암이 가장 많다. 이 세 종류가 전체 두경부암의 70∼80%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최근 환자가 늘고 있는 암이 구인두암이다. 특히 젊은 연령대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원래 이 암은 술과 담배가 큰 원인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바이러스가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구인두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바로 그 바이러스다. 암의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차단하면 발병률을 낮출 수도 있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려는 여성들이 주로 접종한다. 남자들도 접종하면 구인두암을 예방할 수 있다.

두경부암 중에서 가장 발견이 늦고 치료도 어려운 게 하인두암이다.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암이 발견되면 생존율은 30∼40%대로 낮아진다. 일반적으로 암이 임파선 전이가 일어나면 3기로 진단한다. 대체로 4기 이후에 멀리 떨어진 장기로 원격 전이된다. 이 경우 생존율은 30%대로 떨어진다.

치료 방법은 대체로 다른 암과 비슷하다. 초기의 경우 수술을 한다. 구인두암의 경우에는 수술 후에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한다. 후두암은 목소리와 관련이 있어 목소리 보전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수술을 한다.

○ 면역항암 기술 및 유전체 연구에 집중

과거에는 암을 직접 공격해 파괴하는 약을 주로 썼다. 이런 약은 내성이 생길 수 있고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면역시스템까지 망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면역 체계를 개선해 암과 싸우도록 하는 면역항암제가 주목받고 있다.

암세포와 열심히 싸우는 면역세포는 T세포다. 일단 암을 이기려면 T세포가 활발해야 한다. 다만 T세포가 지나치게 ‘흥분’하면 면역 밸런스가 깨져 인체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T세포를 억제하는 단백질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런 원리는 흑색종, 유방암, 폐암 등 일부 암에서는 규명됐다. 이 교수는 2005년 구인두암 환자 70명을 대상으로 두경부암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교수는 또 T세포를 억제하는 단백질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엔 암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암 치료가 효과를 보려면 T세포 수를 늘리거나 T세포를 억제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두경부암에 쓰이는 면역항암제는 환자의 20% 정도에서만 효과를 본다. 나머지 80% 환자는 약물에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 교수는 “암세포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니 T세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암 세포의 존재를 T세포가 알아차리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동물 실험 단계로 지금까지는 결과가 좋은 편이다.

이 교수는 “암이 원격 전이된 환자에게 이 방법을 쓰면 치료 효과가 2, 3배 높아지고 생존 기간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교수는 침샘 암 중에서 특히 생존율이 낮은 몇몇 암과 관련해 암 유전체 분석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환자의 세포를 떼어내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밝혀내고, 그에 맞춰 최적의 약을 찾는 방법이다. 1차 연구는 상반기에 끝난다.

○태아-소아의 ‘숨길’ 치료 탁월

이 교수는 7년 전 일을 잊을 수 없다. 기도(氣道)가 다 생기지 않은 태아의 수술이었다. 탯줄을 자르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됐다. 그 상태에서 태아의 머리를 꺼낸 뒤 목에 구멍을 뚫어 숨길을 틔웠다. 이어 튜브를 삽입해 ‘인공 기도’ 역할을 하도록 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기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두경부암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아기들의 기도 기형이나 결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7년 전 이 수술이 첫 수술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적으로도 꽤 드문 수술이었다. 요즘엔 매달 한 명씩은 이런 수술을 한다. 1년에 한두 번은 아예 기도가 없거나 기형이 너무 심한 경우다. 이 교수 환자의 20%가 기도 기형이나 결손이 있는 아이들이다.

이런 식의 기형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걸까. 이 교수는 추가 수술을 통해 인공 기도를 떼고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4세 이후에는 기도가 충분히 두꺼워지고 탄력도 생기기 때문에 기도의 일부를 당겨서 결손 부위를 메우는 수술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치료가 힘들더라도 서로 믿고 적극 임하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일반 병실에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휴대전화는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 기도 이상으로 호흡 곤란 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입속 한 부위 2주이상 통증땐 구강암 의심을”
두경부암 주요 증세와 예방책

입, 코, 목 어디에 암이 생기느냐에 따라 증세가 다르게 나타난다. 증세가 확연하게 느껴진다면 이미 암이 꽤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윤세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미세한 증세를 초기에 찾아내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강암에 걸렸다면 입안에 통증이 나타난다.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구내염에 걸렸을 때도 통증이 나타나지만 구분법이 있다. 이 교수는 “구내염은 동일한 부위에서 지속적으로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한 부위에서 2주 이상 통증이 계속된다면 구강암 의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음주와 흡연을 하며 50대 이후라면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후두암은 발성 기관인 성대 주변에 생기기 때문에 가장 먼저 목소리부터 변한다. 특히 쉰 목소리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삼키기 힘들거나 숨 쉬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후두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하인두에 암이 생기면 일단 목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미세하거나 혹은 거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혹이 도드라지는 느낌이 든다면 이미 3기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 지체하지 말고 병원에 가는 게 좋다. 물론 목에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해서 모두 암은 아니다. 가령 목 안쪽이 바짝 마른 느낌이 들고, 술과 담배를 즐긴 후나 카페인이 든 차나 커피를 마신 후 이런 증세가 심하다면 위산 역류일 가능성이 있다. 식도를 거슬러 올라온 위산이 후두와 인두를 공격한 것이다. 이럴 때는 위산억제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면 증세가 개선된다.

두경부암을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것이다. 후두 내시경 검사를 하면 입안부터 후두와 인두까지를 모두 볼 수 있다. 내시경을 코로 삽입할 경우에는 비강암부터 비인두암, 후두암 여부를 체크할 수 있다. 다만 검사 목적으로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는다. 질병 치료 목적일 경우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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