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변창흠, 투기 못잡고 사실상 낙마…‘2·4대책’은 어디로?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3-12 17:37 수정 2021-03-1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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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LH 직원 땅 투기 의혹으로 발생한 초대형 태풍에 변창흠 호가 좌초하고 말았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사의를 표명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이를 수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수도권 집값 안정을 위한 야심 차게 준비했던 ‘2·4대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책을 기획했고, 실무 작업을 이끌어갈 지휘관인 변 장관이 떠나게 됨으로써 대책의 추진동력에 타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부실한 정부의 투기 의혹 조사로 커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신도 변창흠 표 주택정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 현 정부서 승승장구

변 장관은 현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대표적인 인사였다. 대학교수 출신으로서 SH 사장(2014년 11월~2017년 11월)을 거쳐 LH 사장(2019년 4월~2020년 12월)과 국토교통부 장관(2020년 12월 29일 취임)까지 역임했다. 공공분야에서 부동산 개발업무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주요 공기업과 주무부처의 수장자리를 모두 꿰찬 것이다. 이런 경력은 그가 유일하고, 앞으로도 나오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같은 성공에는 학자시절 좌파 진영의 부동산 전문가로서 현 정부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각종 부동산 정책 밑그림을 그려온 인연이 작용했다. 특히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과의 긴밀한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한국도시연구소(옛 도시빈민연구소)의 핵심멤버이자 세종대 교수로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1994년 설립된 민간 연구기관으로 빈민가의 주거환경 개선 등을 주로 연구하는 단체다. 좌파적 시각에서 각종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학문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변 장관은 지난해 12월 4일 국토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후 규제 중심의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공급 확대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내정한 뒤 4일 뒤인 12월 8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변 내정자의 주택 공급 구상안에 협조해 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이후 변 장관은 올해 2월 4일 도심지 고밀 개발과 수도권 신도시 등 신규 택지 지정을 통한 대규모 주택공급 계획을 담은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2·4대책)’을 내놓았다. 이후 12일 뒤인 2월 16일 국토부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변창흠표 부동산 정책’을 반드시 성공시켜 달라”며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 투기 관리 실패와 구설에 발목이 잡히다
사진 뉴시스
한마디로 잘 나가던 변 장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동산 투기 관리 실패였다. 2일 시민단체들이 LH 직원 10여 명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에서 100억 원대의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이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투기 행위가 벌어진 시기가 1건을 빼곤 모두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하던 때였다는 점이다.

이후 시민단체와 야당을 중심으로 “출범 이후 내내 투기 억제를 부르짖던 정권에서 투기꾼(LH)을 키웠다”며 거센 반발이 일었고, 변 장관의 관리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정부합동조사단을 꾸려 전수조사를 실시해 11일 결과를 공개했는데 투기 혐의가 있는 거래 20건 중 11건이 변 장관이 LH 사장 재직 중에 벌어진 일로 드러났다.

이후 4월로 예정된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초대형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한 여당에서도 본격적으로 변 장관 퇴진을 요구했다. 변 장관도 12일 열린 국회 국통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청와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변 장관의 ‘LH 직원 옹호성 발언’은 퇴진론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정부가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한 4일 MBC 기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통해 변 장관은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라거나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수용은 감정가로 매입하니 메리트가 없다”라며 LH 직원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한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으로부터 거센 비판이 쏟아졌고, 변 장관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특히 여당으로부터 ‘책임의식 부재’와 ‘이기주의적 행태’라는 질타와 경고를 공개적으로 잇따라 받으면서 장관으로서의 자질 논란도 커졌다.


● ‘2·4대책’ 추진동력 잃을 듯
4일 변창흠 국토부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LH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토지 투기 의혹에 대한 정부합동조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변 장관이 중도 낙마하게 됨에 따라 그가 설계했고, 주도해야 할 ‘2·4대책’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의를 표명한 변 장관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2·4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주도형 공급대책과 관련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즉 ‘2·4대책’의 제도적인 인프라만이라도 갖춰달라는 뜻이다.

현재 ‘2·4대책 관련 법안의 대부분 의원 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변 장관이 법안 처리 과정의 속도에 따라 퇴진 시기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달도 남지 않은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변 장관의 퇴진 요구가 수용된 만큼 이르면 다음주(15~20일) 중 사표가 수리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법안 이외에도 헤쳐 나가야 할 현안이 산적한 상태에서 변 장관의 퇴진은 추진 동력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번 투기 의혹 제기와 부실한 조사 결과로 땅에 떨어진 정부와 부동산 정책 신뢰도가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신도시 예정지 내 토지소유주와 도심 고밀도 개발사업 대상지 내 토지소유주 등이 ’투기 의혹 철저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도심 고밀도 개발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등과 이해관계 조율 작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변 장관의 공백은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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