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혹 붙인’ LH조사 부실, 조바심이 화근이었다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3-12 15:19 수정 2021-03-12 15:5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8일 오후 경기 광명시 일직로 한국토지주택공사 광명시흥사업본부의 모습. 광명=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LH 직원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정부 1차 조사 결과가 기대를 크게 밑돌면서 민심이 들끓고 있다.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눈앞에 두고 땅 투기가 불러온 여파를 최소화하려던 정부와 여당이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의 조사방식으로는 수박 겉핥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언론 등의 지적에도 정부가 무리하게 조사 결과 발표를 강행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불난 호떡집 된 여당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선거 사무소에서 열린 '합니다! 박영선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자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12일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모두발언에서 “(LH 땅 투기 사태와 관련해) 어제 정부 합동 조사단 발표가 있었고, 투기의심 사례가 추가로 발견됐지만 시민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다”며 “특검을 정식으로 건의한다”고 말했다.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이를 곧바로 수용하고 야당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LH 땅 투기 의혹이 한 달도 남지 않은 보궐선거에 최대의 악재로 작용하자 정면 돌파용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가 여론의 기대를 크게 밑돈 것은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대형 악재여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이 일제히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책임론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노웅래 최고위원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신도시 투기 의심자가 7명 추가됐지만, 만족할 만한 수사 결과로 보기 어렵다”며 “최소한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창흠 장관과 경기지역 본부장이었던 현 LH 사장 대행은 책임지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 본격적으로 공개 사퇴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선대위원장도 이날 취재진에 “변 장관은 자리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어느 경우에도 책임 있게 처신할 사람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장관 본인이 자신의 거취에 관해 밝힌 소신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당에서 그동안 사퇴론에 선을 그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달라진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변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청와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 조바심과 오판이 화근이 됐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처럼 부실한 조사 결과가 가져올 후폭풍은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충분히 예견됐었다. 또 정부가 예고한 1차 조사 방식으로는 투기적 거래를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런데도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토부와 LH에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과 3기 신도시 8곳의 부동산거래내역과 토지대장 등을 조회하고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투기적 거래를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공직자가 투기적 목적으로 거래하는 경우 실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극히 적고, 대부분 차명이나 제3자를 통한 우회투자가 많기 때문이다. 또 국토부나 LH의 퇴직자들이 투기적 거래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이런 것들이 모두 배제된 채 진행됐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시민단체 등이 의혹을 제기한 13명 이외에 7명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추가 확인된 사람 가운데에는 자진신고자도 1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부 조사를 통해 파악된 사람은 6명에 불과한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맹탕조사를 서둘러 진행한 것은 LH 땅 투기 의혹이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민단체가 투기 의혹을 발표한 2일로부터 한 달 남짓으로 남은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수방관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세균 국무총리는 11일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이어진 취재기자와의 일문일답에서 “이 문제를 처음부터 수사 의뢰했다면 장기간에 걸쳐 수사하면서 아무 내용도 발표되지 않아 국민들은 더 분노했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조사를 통해 일정 규모의 투기 의혹 대상자를 걸러낼 수 있을 것으로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투기 의혹이 제기된 2일부터 10일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거의 매일 투기 의혹 발본색원 등과 같은 표현을 동원해가며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것도 그런 판단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변 장관 퇴진 요구가 나올 때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며 당 내부 단속에 공을 들여왔다.

● 차명거래 등 투기적 거래 색출에 집중해야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불만을 의식한 듯 앞으로 진행할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통해 철저한 수사를 거듭 약속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지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투기 전모를 다 드러내야 한다”며 “공직자, LH 임직원 및 가족·친척을 포함한 차명거래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차명거래 등 투기적 거래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동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정부가 1차 조사 때는 전형적 투기수법인 차명거래와 미등기전매 등 불법행위는 손도 못 댔다”며 “투기적 목적이 분명한 거래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이번 조사에서 차명거래가 누락된 것이 맹탕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한 뒤 “토지거래내역과 보상받은 내역과 이미 진행된 신도시 사업에 대해 파악해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 주체에 검찰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노태우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신도시 관련 투기 의혹이 터졌을 때마다 예외 없이 검찰이 수사를 지휘해 성과를 낸 만큼 이번에도 검찰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특수단을 경찰 중심으로 운영할 방침이어서 추가 수사에서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