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농업인 농지취득, 예외조항만 16개… 허술한 농지법 ‘LH투기 사태’ 키웠다

세종=주애진 기자

입력 2021-03-11 03:00 수정 2021-03-11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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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투기 의혹 확산]투기 악용 우려에도 미온적 대처
허위 농업계획서 처벌 힘들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3기 신도시 예정지의 농지를 대거 사들이는 과정에서 농지 취득 제도와 관리 체계의 허점이 다시 드러났다. 수년 전부터 ‘농지가 투기꾼의 놀이터가 됐다’는 우려가 쏟아졌는데도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지법상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만 살 수 있다. 하지만 비(非)농업인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는 예외조항만 16개가 있다. 예외조항의 대부분은 공공기관이 소유했거나 정책상 필요할 때 농지를 취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농지를 상속받았거나 농사를 짓다가 중단한 사람, 주말·체험농장(농지 1000m² 미만) 소유자도 예외로 인정돼 농지가 투기 용도로 악용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무원을 포함한 188명이 제주에서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사들였다가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 중 일부는 주말·체험농장 용도임을 내세워 농지를 매입했다.

굳이 예외조항을 적용받지 않아도 직접 농지를 사들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에 농업경영계획서 등 간단한 서류만 제출하면 농지 취득 자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LH 직원의 상당수가 농업경영계획서를 부실하게 작성하거나 허위로 꾸민 것으로 의심되지만 사실상 처벌하기가 힘들다. 이들이 농업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지자체는 이를 판단할 인력과 능력이 부족해 사후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전부터 농지가 투기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계속돼 농지 취득 제도 보완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구체화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간 농지 취득 규제는 농지가 다양하게 활용되도록 완화된 만큼 이를 다시 강화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농지 취득 심사와 사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동천 한국농업법학회장(홍익대 교수)은 “지자체에 사후 관리를 맡기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며 “실제로 농사를 짓는지를 점검하고 판단할 지역별 위원회를 따로 만드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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