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이어 공항 철도 도로…국책사업도 투기 먹잇감?

황재성기자

입력 2021-03-10 14:19 수정 2021-03-1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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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공동취재단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심 행위가 ‘투기 백과사전’으로 불릴 만큼 폭 넓고 다양한 수준으로 이뤄진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이런 투기 의심 행위들에 대한 사전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정부와 LH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LH가 제대로 된 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운영하지 못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가 후속 대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투기 수사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전국이 당분간 땅 투기 수사 광풍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토의 균형 발전 등을 이유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퉈 크고 작은 개발사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 전 국토가 투기 의혹 조사 대상될 듯


김창룡 경찰청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의혹 수사협력 관련 회의’ 에 참석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고위 관계자는 10일 기자들에게 “정세균 국무총리 지시에 따라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며 “시도 경찰청 수사 인력 680명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세청·금융감독위 직원 등 총 770명 정도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의 지시 전 LH 투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국수본 특별수사단은 70여 명 규모였다. 수사단 규모가 10배로 커진 것이다.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파견되는 기관별 인력은 △국세청 약 20명 △금융위 5,6명 △국토교통부 산하 투기 분석원 5,6명 등이다.

이 관계자는 또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이 내부정보를 부정하게 이용한 행위, 전국 각지에서 개발 예정인 농지 부정 취득, 보상이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행위 등을 전방위적으로 수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의 투기 수사는 3기 신도시에 국한되지 않고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다양한 국책 사업 관련 투기 의혹도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시민단체들에 땅 투기 의혹 관련 제보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등 3기 신도시 사업 이외 지역 관련 내용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이 투기 조사 사정권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 투기 위험 경고 여러 차례 울렸다


2일 시민단체의 의혹 제기 이후 쏟아진 언론보도와 9일 국회에서 진행된 국토부와 LH에 대한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 등을 보면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행위들을 사전에 감지할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LH는 2016년부터 2018년 9월까지 모든 부서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뒤 신도시 후보지 관련 보안자료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감사보고서를 내놨다. 내부 협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 외부기관과의 논의에서 관련 정보가 샐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명확한 보안 절차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는 3기 신도시 후보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던 시기다. 그해 9월에는 정부가 신도시 조성을 예고했고, 3개월 뒤인 12월, 남양주와 하남, 인천을 지정했다. 그만큼 중요한 정보가 많이 다뤄지던 때였다는 뜻이다.

당시 LH 감사실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담당 부서에 보안 지침을 만들도록 요구했다. 이 지시에 따라 LH는 2019년 3월 후보지 관련 사무실은 통제구역으로 설정하고 담당자에 보안서약서를 받는 내용을 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해 내부 기강을 점검하는 자체 감사를 실시했는데, 후보지 자료 관리는 물론 군의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보안의 허점이 드러났다. 게다가 처벌도 경고나 주의 등 ‘솜방망이’ 수준에 머물렀다.

청와대에 국민청원도 있었다. 2019년에 5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3기 신도시 관련 전수조사를 원합니다’는 제목의 게시글이 게재된 것이다. 청원인은 “3기 시도시로 지정된 고양시 창릉신도시에는 지난번에 1차 발표 전 정보 유출로 부동산 투기가 예상돼 지정이 취소된 곳과 겹친다”며 “문제는 이 지역 땅을 정부 관계자나 LH 관계자들이 샀다는 이야기가 많이 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청원은 3727명의 동의를 얻는 데 그치며 정부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보 내용이 매우 구체적인 데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현 정부가 이런 제보를 가볍게 보고 사실상 방치한 셈이다.

이런 여러 차례의 경고 무시는 투기 행위 억제 실패로 이어졌다. 이번에 의혹이 제기된 광명·시흥 신도시에 투기 의혹 행위는 모두 이런 우려와 의혹이 제기됐던 2018년~2020년 집중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 토지 거래량도 이상 급등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번지 일대 농지에 LH 직원들이 보상을 노리고 심은 묘목들이 시들어가고 있다. 2021.3.5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시점부터 주변 일대 토지 거래량이 크게 늘어났지만 정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거래현황에 따르면 경기 광명의 순수토지(건축물을 제외한 토지) 거래량은 2016년 893필지로 1000필지를 밑돌았다. 하지만 2017년 1036필지, 2018년 1665필지, 2019년 1715필지, 지난해 2520필지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광명시 순수토지 거래량은 2016년 893필지로 1000필지를 밑돌다 2017년 1036필지, 2018년 1665필지, 2019년 1715필지, 2020년 2520필지로 급증세를 보였다.

인천 계양과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등 나머지 3기 신도시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신도시 발표를 전후로 해서 토지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특히 인천 계양의 경우 2018년 11월 순수토지 거래량이 336필지(건)로 당시 기준 역대 최고 거래량이었다. 이전까지 월간 평균 거래량은 78필지였는데 이와 비교하면 4배 넘게 증가한 수치였다. 정부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대응했더라면 투기 행위를 억제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변창흠 장관이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LH, SH 등 관련 기관의 청렴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 사실도 눈길을 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따르면 변 장관이 사장으로 재직(2014년 11월~2017년 11월) 중이던 2015년 SH의 종합청렴도는 2013년보다 2단계, 전년보다는 1단계 떨어진 5등급이었다. 또 2016년과 2017년에도 5등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권익위는 매년 공공기관 등의 종합 청렴도를 1~5등급으로 평가했다.

LH도 비슷했다. 변 장관이 사장(2019년 4월~2020년 12월)이던 2019~2020년의 종합 청렴도는 4등급이었다. 부패방지 시책평가는 2019년 3등급, 2020년에는 4등급이었다. 변 장관이 오기 전까지 LH의 종합청렴도는 4등급이었지만 부패방지 시책평가는 1등급을 받았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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