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락 된 한진칼 경영권 분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떴다떴다 변비행]

변종국 기자

입력 2021-03-09 15:47 수정 2021-03-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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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한 주주들의 반란이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수성(守成)이냐를 두고 벌어진 한진칼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일단락이 돼가는 분위깁니다. 지난달 조 회장과 경영권을 두고 대립하던 3자연합(KCGI,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건설)은 이달 열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회사 경영진 교체 및 주요 안건 제안 등의 내용을 담은 주주제안권을 행사하려면 주총 6주 전까지는 주주제안서를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데요. 이를 하지 않은 겁니다. 올해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과 3자 연합의 한판 대결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죠.

주주제안을 하지 않은 배경 중 하나는 KDB 산업은행(산은)이라는 존재 때문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진행하면서 거액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대가로 산업은행은 한진칼 지분 약 10%를 확보하게 되죠. 또한 산업은행은 한진칼과 대한항공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산업은행은 공식적으로 “우리는 조 회장에 우호적인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함께 추진하는 입장에서 조 회장과 반대되는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지금 당장은 없다고 봐야겠지요.

또한 한진칼과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추진하면서 ‘투자합의서’를 맺습니다. 합의서 원문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산업은행은 투자합의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언론에 공개를 했습니다. 주요 내용 중에는 △사외이사 3인 지명권 및 감사위원 선임권 산은에 위임 △주요 경영사항 결정 전 산은과 사전 협의 및 동의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및 운영 책임 △경영평가위원회 설치 후 조원태 회장 등에 대한 매년 평가 실시 △통합 계획 수립 및 이행 책임 △대한항공 주식 등에 대한 담보 제공과 처분 제한 △투자합의서 주요 조항 위반 시 5000억 원 위약금 및 손해배상책임 부담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합의의 주요 내용 중 외부 사외이사 선임,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기업 경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등의 내용은 3자 연합이 도입을 주장했던 것들입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우리는 산업은행과 입장이 비슷하다”며 “그 동안 KCGI가 제안한 기업 내부 투명성 보장 조치, 주요 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 구조 강화 등을 한진칼에서 일부 해나가고 있다. 우리가 원했던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입장이 어느 정도 대변되고 있으며, 산업은행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경영을 감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주주제안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KCGI의 해석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3자 연합이 추천하는 사외이사 및 감사, 이사가 들어간 건 아니라는 점에서, 3자 연합이 결국 경영권 분쟁에서 일단 ‘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조 회장 측과 3자 연합의 지분 차이가 그리 많지 나지 않는데, 10%의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이 조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건 3자 연합에게 불리한 구도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즌1은 끝났다. 그러나 시즌2가 또 방영될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일단 3자 연합은 이번 주총 이후로 각자의 길을 걸을 확률이 높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주총에서 3자 연합이 경영권을 확보에 준하는 조치를 얻지 못하면 3자 연합은 사실상 깨지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3자 연합은 일단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당장은 뭐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3자 연합이 산업은행 등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려 일단은 몸을 움츠릴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KCGI가 산업은행 눈치를 보는 것 같다. KCGI이 산업은행과 대립각 세워봐야 이득이 없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산업은행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행보를 보일 것”이라며 “반도건설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발표 뒤 논평도 내지 않았고, 신주인수가처분 금지 소송에도 참여 안했다. 건설사에겐 산은이 중요한 파트너인데 당장 대립각 안세우겠다는 의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즌2를 예상하는 사람들은 “아직 다양한 변수들이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일단 산업은행이 조 회장 편에 선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산업은행이 조 회장과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판단은 오히려 유동적일 수 있다. 한진그룹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경우나, 정권 또는 정치적인 변수에 따라 산업은행의 스탠스가 달라질 수 있다”며 “통합을 해야 하는 지금은 굳건하지만,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통합 논의가 조 회장에 대한 특혜니, 정경유착이니 말들이 많았다. 자칫 정치적인 논란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 며 “통합이 제대로 효과를 못 내면 산은도 골치 아파진다”고 말했습니다. 단, 3자 연합의 지분이 지금처럼 유지가 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이죠. 만약 KCGI나 반도건설이 지분 일부를 정리해버려서 팽팽한 지분 관계가 깨져버리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지분 46% 가까이 확보하며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노리던 3자 연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과 산업은행 변수가 맞물리면서 원했던 바를 이루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한진칼의 주요 주주들입니다. KCGI가 새롭게 진용을 가다듬고 어떤 그림을 그릴지, 15% 까지 지분을 가졌던 반도건설은 또 어떤 역할을 할지 등도 관심사입니다. 각자도생 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다시금 손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은 국내 기업 역사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소수 지분을 가진 중소·중견 주주들이 모여 그룹 총수와 겨룬 한판 승부였죠. 만약 표 대결에서 조 회장 측이 졌다면, 국내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주주들이 반란을 일으켜 대기업의 주요 경영진이 바뀐 사레가 될 뻔도 했습니다. 또한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앤컴퍼니그룹, 금호석유화학 등도 경영권 분쟁이 휘몰아치고 있는데요, 이들 기업의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은 KCGI 측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를 떠나서, 3자 연합의 반란은 재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사례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전설의 야구선수 요기베라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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