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 LH’ 수사, 뒤늦게 판키운 정부 노림수는?

황재성기자

입력 2021-03-09 11:48 수정 2021-03-09 16:24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8일 오후 경기 광명시 일직로 한국토지주택공사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 관계자들이 나오고 있다. 광명=송은석기자 silverstone@donga.com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져 조사를 받고 있는 LH에 대해 경찰이 9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당초 정부의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경찰 수사가 앞당겨진 것이다.

정부는 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국세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더해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조사 대상자 범위를 2013년까지 확대해 10만 명에 달하는 신도시 관련 공무원과 가족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펼치기로 했다.

투기 관련 수사의 속도를 높이고 규모를 키워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여론을 잠재우고, 파상공세를 이어가는 야당을 견제하는 한편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직사회 기강을 잡기 위한 다목적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조사에 참여하면서 불거진 ‘셀프 면제권’ 논란에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LH 직원들에 대한 옹호성 발언, 끊임없이 추가되고 있는 LH직원과 공무원들의 투기성 행태들로 악화된 여론을 되돌리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부대를 통한 3기 신도시 관련 정보 유출 의혹도 불거지고 있어, 수사 범위를 정부 계획보다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 정부합동조사 결과 전에 투입된 경찰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9일 오전 9시 30분부터 포렌식 요원 등 수사관 67명을 동원해 LH 본사와 경기지역 과천의왕사업본부, 인천지역 광명시흥사업본부 등 3곳과 투기 혐의를 받고 있는 LH 직원 13명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또 13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보고,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LH가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2017년 8월 30일부터 작년 2월 27일까지 12개 필지를 100억 원대에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흥에선 직원 10명이 8개 필지(1만7995㎡)를 단독 혹은 공유 형태로, 광명에선 3명이 4개 필지(8990㎡)를 사들였다.

당초 경찰의 LH 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는 정부합동조사단의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1만 4000명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진행될 예정이었다.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는 이르면 10일이나 11일경 발표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법무부·행정안정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경찰은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기다리지 말고, 수사를 병행하라”고 지시하면서 일정이 당겨진 것이다.

● 조직과 조사 대상 규모 커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화상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1.03.02
문 대통령은 또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과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해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라고도 했다. 검찰의 수사 참여를 주문한 셈이다.

다만 검찰이 수사를 주도하거나 별도로 수사에 나서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검찰의 수사경험을 국가수사본부와 공유하고, 공소 유지에 협조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에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리기로 했다. 여기에는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게 된다. 토지 거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탈세는 없는지와 투기 여부를 가늠할 자금 흐름 등을 조사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또 조사 대상도 확대하기로 했다. 1차 조사대상도 국토부(직원 수·4500명)와 LH(9900명)에다 3기 신도시가 위치한 지역 지방자치단체 신도시 담당직원(6000명)과 지방공기업(3000명)을 추가하기로 했다. 다만 금주 중 조사 결과는 국토부와 LH 직원들에 대해서만 발표된다.

이후 이들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에 대한 조사가 2차 대상이 된다. 최창원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이와 관련해 “일부 지자체가 전체 직원을 모두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며 “이런 인원들을 포함하면 조사대상은 10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사 범위도 넓혀진다. 2000만 원 이상의 자금에 추적조사가 이뤄지고, 가명, 차명, 미등기전매 등 불법행위 이외에 탈법적인 거래행위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된다. 또 2018~2019년에 확정된 3기 신도시 지정 계획이 처음 일반에게 공개된 시점인 2013년 12월 이후 거래도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

● 여론 달래고, 야권 조이는 등 다목적 포석
정부의 투기 의혹 조사가 빠르게 수사로 전환되고, 조사를 이끌어갈 조직과 조사 대상규모가 커지는 것은 투기 의혹으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다음달로 예정된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게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선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조기에 성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기 의혹 수사에서 검찰과 감사원을 사실상 배제했다가 뒤늦게 검찰을 시키는 게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최고위원은 9일 TBS라디오에서 “검찰이 빠져있다고 자꾸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검찰에는 LH 전담팀이 구성돼서 합동수사본부와 검찰이 전담 팀과 함께 협력해서 수사를 협력수사를 진행하게 된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여기에 이번 땅 투기 의혹이 현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는 야권의 발목을 잡으려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야권 인사들의 행적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를 볼모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1년 정도 임기를 앞두고 나타나기 쉬원 정권 말 레임덕 현상과 이번 땅 투기 의혹 제기로 어수선해진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기 위한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여당도 이런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오래 전부터 계속 반복되어 왔을 것”이라며 “이번이 우리 정부에서의 전화위복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번 걸 계기로 근본적으로 뿌리 뽑는 그런 대처를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부 조사 한계 있을 것”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3기 신도시 투기 관련 브리핑을 마친 후 나서고 있다. 2021.03.04.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정부합동조사단이나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더라도 파장이 쉽게 가라앉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우선 국토부가 조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셀프 면제’를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국민 반발이 크다. 여기에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LH 직원 옹호성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이 검경 유기적 협력을 당부한 것도 이런 국민감정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투기 의혹이 많이 나올 경우엔 정권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반대로 예상보다 적거나 없을 경우엔 부실 조사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적 후폭풍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기 신도시 일부 정보가 LH가 전문위원으로 채용한 영관급 퇴역군인을 통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사 대상에 군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군부대는 고도제한 문제를 비롯해 대형 개발계획 추진과정에서 의사 결정자로 많이 참여하는 만큼 유출의혹 조사에서 배제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