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내도 남는 장사”… 탑승객 캐리어에 면세품 빼곡

인천=변종국 기자

입력 2021-03-09 03:00 수정 2021-03-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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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복 무착륙 관광비행 해보니

지난달 20일 에어서울 무착륙 관광 비행 이용객들이 양손에 면세품 쇼핑백과 여행가방을 든 채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에어서울 제공
6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에어서울 면세 비행 항공기 탑승구 앞. 서울에서 온 30대 승객 최모 씨의 여행용 가방에는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손지갑, 액세서리 등이 빼곡하게 차 있다. 최 씨는 “이것저것 합쳐서 1000달러(약 113만5000원) 정도 결제했다. 각종 할인, 쿠폰 등을 써 정상가보다 50% 이상 싸게 산 것 같다”고 말했다. 면세 쇼핑을 하고 싶어 해외여행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던 최 씨는 면세 비행 상품이 나와서 바로 선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린 항공·면세 업계가 무착륙 관광 비행(면세 비행)으로 미력하게나마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출발지로 돌아와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면세 할인 폭이 크고 항공 여행 갈증을 달래주고 있어 면세 쇼핑족들에게 인기다. 어려움을 겪는 항공·면세 업계가 당장 매출을 회복할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로나로 억눌려 있는 소비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업계는 희망을 걸고 있다.

이날 에어서울 면세 비행은 인천을 출발해 일본 요나고(米子)와 다카마쓰(高松) 상공을 돌아 인천으로 돌아오는 2시간 코스였다. 면세품 인도장은 준비해온 여행용 가방에 면세품을 담는 승객들로 북적였다. 화장품, 향수, 패션 잡화는 물론이고 유모차, 킥보드, 고급 가방까지 물품도 다양했다. 화장품만 잔뜩 구매한 여성, 여행용 가방이 모자라 카트에 쇼핑한 물품을 실어 나르는 남성 등도 눈에 띄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 비행만 다섯 번 이상 탑승한 고객도 있다. VIP 고객들에게 추가 할인을 해주겠다고 전화로 홍보하며 면세 판매를 독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할인 폭은 예상보다 크다. 구두, 화장품, 선글라스, 아동용 장난감 등을 구매한 한 고객은 시중에서 샀다면 총 1100달러 정도를 내야 하지만 면세품 기본 할인에 항공사·면세점 할인 쿠폰, 통신사 및 카드사 할인 등까지 끌어모아 500달러 이내로 살 수 있었다. 약 11만 원인 항공료와 공항 교통비 등을 더해도 절반 가까운 할인을 받은 셈이다.

1인당 면세 한도(600달러)를 초과하면 구매금액의 20%(면세 한도만큼 공제)에 해당하는 관세를 내야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이득이 크다. 1000달러어치 면세 쇼핑을 하면 80달러가량 세금을 내지만, 자진신고 감면(세액의 30%)을 받아 실제 내는 관세는 56달러 정도다. 이날 면세 비행을 한 박은별 씨는 “구매 금액이 늘어날수록 할인되는 쿠폰이나 프로모션이 많다. 면세 한도 초과 세금을 내도 워낙 할인 폭이 커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 더 타려 한다”고 말했다.

무착륙 관광 비행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항공사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11월 허용했다. 목적지 없이 해외 영공만 선회하는 비행이지만 면세 쇼핑이 실속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날 에어서울 면세 비행 탑승률도 93%였다.

업계에 따르면 1월 이후 항공사들의 면세 비행 평균 탑승률은 90%를 웃돈다. 항공료와 기내 면세품 매출 등을 합치면 면세 비행 한 편당 항공사가 내는 매출은 2000만 원 안팎이다. 승객이 어느 정도 차야 손해를 보지 않고, 코로나19 방역 준비도 만만치 않아 항공사들은 주로 주말에 비행기를 띄운다. 인건비와 유류비 등을 제외하면 들이는 품에 비해 의미 있는 수익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항공사들과 면세업계는 면세 비행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한 저가항공사 관계자는 “큰 수익이 나는 건 아니지만 코로나19 시기에는 가뭄 끝 단비처럼 느껴진다. 해외여행 재개 후 늘어날 수요를 예측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항공사들은 공을 들이고 있다. 기내에서 각종 고객 이벤트와 게임 등을 진행하고 일본 현지 지방자치단체가 준비한 경품도 제공한다. 일본 요나고공항 직원들은 요나고 상공을 지나는 에어서울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여행이 재개되길 바라는 마음은 승객, 항공사, 공항이 다르지 않다.

인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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