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美증시 체크, 채팅방서 주식공부… 주식에 삶을 맞췄어요”

김자현 기자

입력 2021-03-06 03:00 수정 2021-03-06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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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주린이’서 동학개미 주축된 2030
작년 개설 주식계좌 절반이 2030
해외주식도 공격적으로 투자해
“상승장 투자성과, 착시주의해야”


“주식에 삶을 맞추는 ‘주식형 인간’이 된 것 같아요.”

회사원 정모 씨(29·여)는 지난해 9월 처음 주식 투자에 입문한 뒤 생활 패턴이 달라졌다. 기상 시간은 오전 7시에서 5시 반으로 앞당겨졌고, 지각이 잦았던 회사는 30분 일찍 출근한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6시인 미국 증시 마감과 오전 9시인 국내 증시 개장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친구들과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나누는 대화도 대부분 주식 얘기다. 공매도, 신용거래, 국채 금리 등 낯설기만 하던 금융 용어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이끈 동학개미의 주식 열풍 중심에는 ‘청년개미’들이 있다. 작년 한 해 새로 개설된 주식 계좌의 절반이 2030세대의 것일 정도다. 최근 증시 상승세가 주춤하지만 청년개미들의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 ‘2030 주린이’, 동학개미 주축으로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개인투자자가 많이 찾는 키움증권에서 지난해 약 236만 개의 신규 주식 계좌가 개설됐다. 이 중 52%인 123만 개가 20, 30대 계좌였다. 2019년(25만 개)과 비교하면 1년 새 5배로 급증했다. ‘2030 주린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어진 동학개미운동의 주축으로 떠오른 것이다.

2030세대가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건 부모 세대에 비해 자산 축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해 25∼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서도 68%가 “미래는 자산 축적이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연이율 1%가 되지 않는 은행 예·적금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률이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중산층이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5.6년간(지난해 11월 KB국민은행 통계 기준) 모아야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치열한 입시와 취업 경쟁을 겪은 청년들에게 “월급만 차곡차곡 모았다가는 ‘벼락거지’ 신세가 되겠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투자에 눈 뜬 2030세대는 미국, 중국 등 해외 주식시장으로도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 증권사 중 해외 주식 잔액이 가장 많은 미래에셋대우에서 올해 신규 해외 주식 계좌의 49%를 20, 30대가 개설했다. 과거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주식을 사고팔 수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투자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점도 청년들의 투자 자신감을 심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 청년 투기 성향 높아…“상승장 착시 벗어나야”

하지만 2030세대 가운데 무리하게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서거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테마주에 투자하는 이도 적지 않아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0세 미만 청년층의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지난해 9월 4200억 원으로, 2019년 말(1600억 원)에 비해 162.5% 급증했다. 전체 연령층의 증가율이 89.1%인 점을 고려하면 청년개미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투기 성향을 보인 것이다.

청년개미를 중심으로 단타 매매 성향도 두드러진다. NH투자증권이 자사 고객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1월 20대와 30대의 신규 주식 계좌의 회전율은 각각 5248%, 4472%에 이른다. 20, 30대의 평균 계좌 잔액은 각각 583만 원, 1512만 원인데 빚투와 단타로 3억 원, 6억 원 이상을 거래했다는 뜻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승장에서 투자 성과를 온전한 자기 실력으로 보는 ‘착시’가 일어날 수 있다”며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투자의 기본 원칙을 청년개미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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