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제주해녀 닮은 뿔소라… 공연 보며 음식 나누는 ‘창고 다이닝’의 참맛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입력 2021-03-03 03:00 수정 2021-03-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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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소라미역국을 포함한 식사. 이윤화 씨 제공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음식을 만드는 공간에서 여러 번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다. 평소 대량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무미건조한 작업장이었지만 파티가 열릴 때는 특별한 다이닝 장소로 변신했다. 셰프가 즉석으로 직화 스테이크를 구워내고 산지 직송 석화찜 등 별미 음식을 만들 때의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소프라노가 노래를 부르고 마술쇼도 열린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주방에서 이뤄진 스탠딩 파티라 불편함도 있었지만 오감을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경험이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파티를 ‘창고 다이닝’이라고 불렀다.

얼마 전 제주에 갔다가 특별한 창고 파티를 경험했다. 제주 동쪽 끝에 있는 ‘해녀의 부엌’이라는 곳이다. 공연을 보고 식사를 하는 극장식 다이닝이었다. 열 살 때부터 우영밭(제주 방언으로 텃밭)의 박을 따서 속을 파내고 퐁당퐁당 물질 연습을 해온 권영희 할머니는 89세임에도 현역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식사 전 공연에서는 20대에 남편을 잃고 5남매를 키운 권 할머니의 해녀 인생을 그린 단막극이 펼쳐졌다. 공연 막바지에 할머니는 고객 테이블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무대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본인 역할을 한 ‘젊은 권영희’에게 말을 건네며 막이 내린다. 공연 후 권 할머니를 비롯한 해녀들이 따온 해산물과 해초로 구성된 메뉴가 펼쳐진다.

일반적인 소라와 다르게 제주 현무암에 박혀 있다 보니 뿔이 많이 생긴 뿔소라가 인상적이다. 뿔소라를 수조에 담가 두면 뿔이 점점 없어져 보통 소라처럼 된다고 하니, 강인하게 거센 자연에 맞서 견뎌온 세월의 증거를 제 몸에 두른 소라는 제주 바다에서 생존하는 해녀의 강건함에 비유되곤 한다. 즉석에서 짠 감귤주스, 우뭇가사리, 뿔소라와 적해삼, 고장초(해초)가 전채 요리로 등장한다. 거기다 뿔소라꼬치구이, 뿔소라미역국도 맛보게 된다. 바다 생물 군소는 해초를 뜯는 모습이 뭍의 검은 소가 풀을 뜯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군소라 불렸다고 하는데 고급 능이버섯 식감을 연상케 한다.

식사의 감동이 끝날 무렵, 권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에는 얇은 무명천 해녀복을 입고 물질을 했는데 30분 남짓 물질한 뒤 1∼2시간 몸을 녹여야 체온이 돌아왔다고 한다. 듣고 보니 이곳 음식 하나하나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바다가 해녀들의 부엌이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녀의 부엌을 만든 김하원 씨도 만났다. 해녀 집안에서 성장한 제주 출신으로,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젊은 대표다.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공연과 접목해 음식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다.

최근 코로나19로 외식의 형태가 배달로 재편되면서 외식업 종사자들은 본인의 음식이 배달 방식으로 바뀌지 못할까봐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이러다 특정 공간에서 즐기는 음식의 감동이 가볍게 치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 때도 있다. 이런 시기에 제주에서 만난 창고 다이닝은 공간의 매력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힘이 무한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니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할 뿐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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