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슈&뷰]면세 거래, 자금세탁 악용 막아야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 2021-02-23 03:00 수정 2021-02-2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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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조직, 범죄 수익금을
포인트로 바꿔 면세 화장품 구매
거래 투명성 확보할 제도 마련을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국제사회는 불투명한 자금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차단하고 자금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테러나 범죄 조직으로 불법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우리도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분석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을 시행하는 등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금세탁이 일어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면세 거래다.

지난해 11월 초 보이스피싱 조직이 국내 한 면세점 가상계좌를 이용해 범죄 수익금 6000만 원을 포인트로 전환하고 화장품을 구매한 사건이 있었다. 구매된 제품들은 홍콩으로 배송돼 현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면세점 자체 조사 결과 이런 방식으로 10차례에 걸쳐 2억8000여만 원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외국인 고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82% 감소한 320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은 13조448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9% 감소했다. 외국인 고객 수보다 상대적으로 매출 감소 폭이 작은 것은 면세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외국인 고객이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업계에서 보따리상이라고 하는 큰손 고객들이 면세업계 매출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

보따리상의 경우 신고되지 않은 현금을 사용해 거래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환치기 조직들부터 불법적으로 조달한 현금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세탁, 탈세, 보이스피싱을 목적으로 하는 불법자금이 면세품으로 둔갑해 쉽게 해외로 빠져나가는 창구로 면세 거래가 악용될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면세점은 세계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높다. 하지만 면세점들은 구매 물품 대금 출처를 고객에게 확인해야 할 의무나 권한이 없으니, 이것이 범죄 자금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판매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면세점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 기업의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도 자금세탁을 막을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잠재적 리스크만 고려하다 보면 면세점 매출의 큰 축인 보따리상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국내 면세산업을 흔드는 위기 요소가 될 수 있다.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면세점, 보따리상과 같은 거래 주체가 아니라 거래 방식의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거액의 현금 거래를 할 때는 자금 출처를 기록하는 제도를 두거나 핀테크 기술을 이용해 투명하고 편리한 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건전한 면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오면 국내 면세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부터 면세품 유통시장의 불법적인 현금 거래 리스크를 줄이고,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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