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뭐길래…현대제철 가진 현대차가 포스코 찾아간 이유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김도형 기자

입력 2021-02-20 18:39 수정 2021-02-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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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수소’를 계기로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협력하려는 움직임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16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청송대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직접 만나 ‘수소 사업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는데요.

국내 재계서열 2, 6위인 두 그룹이 사업 협력을 위해 손을 잡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그룹은 포스코에 이어 국내 2위 철강사인 현대제철을 핵심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기업집단입니다.

지난 2010년 1월 현대제철 1고로에 불을 붙이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모습. 동아일보DB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구호가 누대의 염원이었던 현대차그룹입니다.

그런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은 왜 직접 포항을 찾아가서 최정우 회장의 손을 잡은 것일까요.

포스코그룹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앞으로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운행 중인 1500대의 차량·트럭을 현대차의 수소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1500대.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수소차 공급하자고 두 회사의 수뇌부가 모인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내·외에서 수소경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앞으로 하겠다고 한 일들의 의미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늘 차담은, 자동차보다는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세계적인 전기차 보급 전망을 살펴본 지난주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호응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어나는 전기차, 내연기관 뛰어넘는 건 10년 뒤? 20년 뒤?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10213/105398922/1



김도형 기자의 휴일車담 전체 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10900000002


● 정몽구 명예회장, 현대제철 완공하며 ‘쇳물에서 자동차까지’ 완성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을 얘기하려니 철강을 둘러싼 두 회사를 ‘과거사’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지난 2010년 1월 6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한번 가져와 봅니다.

“5일 충남 당진군 현대제철 당진공장. 섭씨 영하 5도를 밑도는 추위에 눈발도 흩날렸다. 전날 폭설로 공장 지붕과 마당이 온통 눈밭이었고 110m 높이의 고로(高爐) 공장에는 쌀쌀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시종 상기된 모습이었다. 그는 현대제철 임직원의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고로 아래쪽 풍구(風口)로 횃불을 밀어 넣었다. 축포가 터지면서 정 회장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현대제철은 이날 연생산량 400만 t 규모의 제1기 고로 화입(火入)식을 가졌다. 화입식은 철광석과 코크스가 들어 있는 고로 하단부에 처음 불씨를 넣는 행사다. 고로의 본격 가동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2006년 10월 27일 착공식 이후 3년여만의 일이다.”

한보철강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이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 첫 번째 고로를 완공하고 불을 넣던 바로 그 날의 모습입니다.

저 날 행사를 앞두고 내렸던 기록적인 폭설에 대해서는 요즘도 가끔 현대차그룹 직원들에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역사에서 손꼽히는 중요 행사였는데 상당도 못했던 폭설로 준비가 너무 힘들었다는 하소연입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현대제철 제공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일관제철소 건설은 정 회장의 부친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시절부터 현대가(家)의 꿈이었다. 1977년 고 정 창업주가 일관제철소 설립을 추진했다가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는 등 네 차례나 좌절을 겪었다.

‘4전5기’에 도전하는 만큼 고로에 대한 정 회장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다. 아버지의 유지를 완성한다는 사명감도 컸다고 알려졌다.

매주 두세 차례 당진을 찾아 직원들을 독려했고 주말에도 수시로 현장을 찾았다. 정 회장은 이날 화입식에서 ”고로사업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시작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지나간 기사만으로도 철강업에 대한 현대차그룹 그리고 정몽구 명예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전해지는 듯 합니다.

기사 속의 ‘일관제철소’는 철광석에서 뽑은 쇳물부터 최종 철강 제품까지 모두를 만들 수 있는 제철소라는 의미입니다.

● 자동차, 조선, 건설… 모두 ‘철’ 없이는 불가능

현대차그룹은 왜 직접 철강업을 하고 싶었을까요.

간단합니다. 범현대가 전체에서 철강은 너무 중요한 소재였습니다.

자동차 생산에서는 고품질의 철강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확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강재가 필요합니다.

매끈한 표면으로 외장재로 쓰일 수 있는 아연도금강판.

차량의 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별도의 열처리를 한 핫스탬핑 강재.

주요 부품에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특수강 등등…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 자동차에 쓰이는 고강도 강판을 ‘핫 스탬핑’ 공법으로 생산하는 모습. 현대제철 제공


차량의 기계적인 성능, 경량화는 물론 디자인적인 요소까지 좌우하는 것이 철강재입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선박 제조는 두꺼운 철강 제품인 ‘후판’ 없이는 아예 불가능합니다.

후판은 조선소의 선박 제조 원가를 좌우할 정도입니다.

현대건설이 영위하는 건설업에서도 철강은 기초, 핵심 소재입니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의 산업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면서 필요한 쇠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국내 철강업에서 포스코의 독점 구조는 오랫동안 강력했습니다.

포항제철소에 이어 광양제철소가 만들어지는 역사 속에서 고로에서 쇳물을 만들어 내는 곳이 포스코 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철강과 관련된 산업계에서는, 철강재를 만들기만 하면 서로 가져가겠다는 곳이 줄을 서 있었던 시절이 길었다는 얘기를, 지금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안정된 수급과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직접 철강업을 하겠다는 것은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당연한 노력이었을 수 있을 듯합니다.

● 현대제철, 고로·전기로 양대 축으로 2400만 톤 규모

바로 이웃인 중국의 철강 생산 능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철강은 과잉 공급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만…

어쨌든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국내 1, 2위 철강사로 다양한 산업에 철강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철강사의 생산 능력을 대표하는 지표는 조강생산입니다. 제품 단계가 아니라 쇳물 기준의 생산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강공장의 조업 모습. 현대제철 제공


포스코는 올해 3780만 톤의 조강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최근 공시했습니다.

포스코는 파이넥스 등의 설비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포항·광양 2곳에 고로를 가진 글로벌 철강사입니다.

포스코는 포항에 4기, 광양에 5기, 총 9기의 고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위 철강사인 현대제철의 조강 생산 능력은 2400만 톤가량입니다.

현대제철의 생산 능력은 절반은 고로, 절반은 전기로 기반입니다.

건설용 철근 같은 제품은 전기로에서 고철(스크랩)을 녹여서 만든 쇳물로 제조하면 됩니다.

그리고 당진제철소의 고로 3기에서 철광석을 녹여서 만든 쇳물로는 자동차용 강판 등을 만들면 됩니다.


● 수소 협력 위해 포항제철소 찾아간 정의선 회장


승용차 1대에는 평균 1톤의 철강재가 쓰인다고 계산합니다.

현대차그룹의 차량이라고 해서 현대제철의 철강재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한 대의 차량에는 상당히 다양한 철강사의 철강재가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종류의 부품에는 한 철강사의 소재만 쓰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서로 다른 부품에는 다른 철강사가 공급한 소재가 들어가는 식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현대제철의 존재가 있다보니 현대차그룹과 포스코의 협력 관계는 과거보다는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2017년 인천 연수구 포스코 글로벌R&D센터에 한국GM의 신형 크루즈와 크루즈의 차체가 함께 전시된 모습. 한국GM 제공


수년 전에는 포스코가 신임 임원들에게 제공하는 차량으로 한국GM, 르노삼성차의 차량을 선택했다는 것이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좋든 싫든 간에 포스코의 철강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긴 세월을 지나서 자체적으로 철강사를 가진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 현대차그룹에서 지난해 회장으로 취임한 정의선 회장이 직접 포항제철소를 찾아간 장면. 제가 보기에는 상징성이 큽니다.

두 회사가 철강을 둘러싼 미묘한 알력 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협력을 여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 포스코, 2차전지 소재 이어서 수소로 영역 확장 중


여전히 많은 국민들에게는 ‘포철’ 혹은 ‘포항제철’이라는 이름이 각인돼 있을 포스코는 2차전지 소재사업을 이미 본궤도에 올려놓았습니다.

포스코켐텍과 포스코ESM이 합병해 새롭게 출범한 포스코케미칼이 대표 계열사인데요.

전기차용 배터리로 각광받고 있는 2차전지 소재 영역에서 음극재와 양극재를 모두 생산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의 파트너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포스코케미칼이 2차전지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는 전남 광양공장의 전경. 포스코케미칼 제공

포스코가 보유한 아르헨티나의 염호 등을 기반으로 직접 리튬 사업에도 나서는 가운데 니켈, 흑연 등 2차 전지소재 밸류체인 전반을 공략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포스코가 최근 공식화한 신사업이 바로 수소 관련 사업입니다.

수소가 관심을 받으니 한번 시도해 보는 것 아니냐고 보기에는 포스코가 밝힌 숫자의 단위가 좀 큽니다.

2050년에 연간 500만 톤의 수소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매출 3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장기계획이긴 합니다만, 30조 원은 포스코의 매출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내놓을 때 밝힌 2018년 국내의 수소 공급 규모가 18만 톤 정도였습니다.

이 공급 규모를 2040년 526만 톤으로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인데 포스코가 2050년에 이 정도를 생산하겠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는 수소 1킬로그램으로 100킬로미터 정도를 주행할 수 있습니다.

연간 500만 톤이면 1년에 1만 킬로미터를 주행하는 넥쏘를 5000만 대 굴릴 수 있는 셈인데요.

사실 저 정도의 수소는 운송용을 넘어서 발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소가 활발하게 쓰인다는 것을 가정해야 필요한 양이겠습니다.


● 포스코, 자원 개발·에너지 사업 등에서 경쟁력


이른바 ‘오너 기업’도 아닌 포스코의 30년 뒤 계획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 것이냐… 는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수소경제 구축이 중대한 변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포스코그룹이 이미 가진 능력으로 벌일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포스코그룹은 해외에서 자원 개발에 나서고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에너지 사업을 직접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청송대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부터)이 ‘수소 사업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악수하는 모습.


수소경제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에너지 대전환’입니다.

수소가 하나의 에너지 자원이 되어서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재화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기체로 운송해서는 경제성 확보가 힘들 것이고 액상화 혹은 액화시킨 수소가 LNG처럼 거대한 선박에 실려서 국가 간에 거래되는 상황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포스코그룹이 지난해 말에 내놓은 다음과 같은 설명은 눈여겨 볼만합니다.

“그룹사의 역량을 집중해 ‘생산-운송-저장-활용’ 전 주기에 걸친 가치사슬도 함께 마련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부의 수소 도입 사업과 해외 수소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포스코에너지는 수소 전용 터미널을 구축함과 동시에 현재의 LNG터빈 발전을 30년부터 단계적으로 수소터빈 발전으로 전환한다.

포스코건설은 수소 도시 개발 프로젝트는 물론 수소 저장과 이송에 필요한 프로젝트 시공을 담당하게 된다.”

이런 내용인데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가스전 사업을 성공시키면서 해외 에너지 자원 개발에서 의미가 큰 성과를 거두고 추가적인 가스전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차 그리고 수소연료전지라는 제품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자원 개발, 에너지 사업 등과는 거리가 먼 기업입니다.

자원, 에너지 사업 등에서의 이미 확보한 능력을 기반으로 수소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힌 포스코그룹과의 협력은 두 회사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일 수 있겠습니다.

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각기 호주의 철광석 생산업체 FMG(Fortescue Metal Group)와 수소 생산에 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 현대차·포스코, 환경의 도전 앞에서 맞잡은 손


환경 문제는 한국 전통 제조업의 상징 같은 두 기업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마주한 가장 강력한 도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포항·광양제철소의 ‘고로’는 근본적으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시설입니다.

철광석에서 쇳물을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포스코 뿐만 아니라 모든 제철소의 고로가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여전히 철기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그동안 축적해 온 이 철강 생산의 방법론 자체를, ‘수소환원제철’로 바꿀 수 있느냐를 실험해보라는 과제가 포스코 그리고 글로벌 철강업계 전체에 주어진 상황입니다.

포스코가 계획하는 500만 톤의 수소는 상당한 양이 자체적으로 소비될 수도 있겠습니다.

현대차그룹이 마주한 현실은 최근의 전기차 물결이 보여주는 그대로입니다.


현대차가 ‘무공해’라고 강조하는 수소전기차 넥쏘. 현대차 제공


완성차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세계 구석구석의 도로를 달리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점.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전기차 확산에 적극 대응하면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한 수소전기차를 비장의 무기로 만들어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소가 두 회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성패를 점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지만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할 이슈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조금 더 디테일한 이슈들은 다음 기회에 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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