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쿠팡 美증시 택하자 뒤늦게 “차등의결권 입법”… 그마저도 반쪽

박성진 기자 , 최혜령 기자

입력 2021-02-20 03:00 수정 2021-02-2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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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투자 유치에도 경영권 방어… 與, 정부안 발의 두달만에 24일 상정
비상장 기업 한해 주당 10개 의결권… 상장 이후 3년 뒤엔 보통주 전환
벤처업계 “대상 기업 확대해야”… 시민단체 “재벌 세습 제도화” 반발




더불어민주당이 벤처기업 경영진의 보유 주식에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추진한다. 국내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한 배경으로 이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국내에선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되면서다.

다만 현재 검토되는 차등의결권은 상장 이후 3년 뒤 보통주로 전환되는 등 경영권 방어에 한계가 있는 ‘반쪽짜리 의결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쿠팡 미국행’에 정치권 “3월 처리 목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4일 전체회의를 열어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상정해 법안을 심사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의한 정부안으로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2개 이상 최대 10개까지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회 산자위 민주당 간사인 송갑석 의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법안 심사를 시작하는 단계지만 가능하면 속도를 내서 3월 내 처리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벤처기업의 자금력이 달려 경영권 방어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창업기업은 벤처캐피털(VC)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성장한다. 거액의 투자를 받으면 창업주의 기존 지분이 희석돼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2019년 연매출이 250억 원 규모인 A사는 약 15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그 결과 창업주의 지분이 기존 99%에서 48%로 줄었다. 지분 과반을 확보 못 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외부 자본에 휘둘리거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원래 벤처기업특별법은 법안 처리 순서상 후순위였다. 쿠팡의 미국행을 보면서 경영권 방어에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우선 처리 대상 법안으로 부각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차등의결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법안 심사 필요성이 커졌다”며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라 큰 이견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차등의결권이 쿠팡의 뉴욕 상장에 영향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비상장 기업만 대상… 경영권 방어에 한계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은 것과 달리 벤처업계는 정부안에 대해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정부안에서 차등의결권 도입 대상은 비(非)상장 기업이다. 현재 벤처 인증을 받은 비상장 기업이 많지 않다. 국내 약 360만 개의 중소기업 중 3만9000개(약 1%) 정도만이 차등의결권 도입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상장, 비상장, 벤처 인증 여부와 관계없이 차등의결권을 부여받을 수 있는 대상 기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규모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보유 지분이 30% 밑으로 떨어질 경우 최대 10년까지만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고, 상장 후 3년이 지나면 보통주로 전환해야 하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이 상장 3년 후에 사라지느냐”며 “차등의결권의 별도 소멸 기간을 정해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제한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19년 벤처기업 20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84개 업체(88.04%)가 차등의결권 도입에 찬성했다. 성장 단계나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투자 유치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다수 벤처기업들이 차등의결권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차등의결권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경실련은 “차등의결권은 적은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등 소유와 지배의 괴리를 증대시키는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재벌 세습의 제도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여권은 차등의결권 도입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민주당은 ‘3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17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차등의결권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되 1주 1의결권이라는 원칙에 위배돼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인수합병이 어려워진다는 점은 보완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최혜령 기자

::차등의결권::
최대 주주나 경영진의 보유 지분에 대해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경영권 방어 수단. 복수의결권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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