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놈이 더하다?” 우리는 다르다… 김봉진·김범수 ‘흙수저의 반란’

뉴스1

입력 2021-02-19 07:45 수정 2021-02-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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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형제들, 카카오 로고 © 뉴스1

“돈 벌러 공고에 가겠습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께 한 말이다. 김 의장은 고흐 같은 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붓 대신 ‘납땜기’만 쥐고 살았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겨우 아버지를 설득해 꿈꾸던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넉넉지 못한 유년시절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봉진 의장만큼이나 ‘흙수저’로 유명한 기업가가 바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그는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 2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님과 할머니를 포함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을 만큼 어려웠던 그는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혈서’를 쓰며 마음을 잡았던 그다.

한국의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 벤처 창업가들이 나란히 재산 기부를 선언했다. 지난 18일 김봉진 의장은 부인 설보미씨와 함께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에 공언했다. 지난 8일 김범수 의장도 카카오 구성원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보내면서 ‘재산 절반’을 사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1조원, 10조원 거부들의 파격적인 기부 선언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두 의장 모두 ‘액수’가 아닌 ‘범위’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그간 국내 기업가들의 기부는 종종 있었지만 ‘10억’이나 ‘100억’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두 의장은 ‘재산 절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굳이 액수를 추정하자면, 김봉진 의장의 경우 더기빙플레지에 가입하기 위해선 자산이 ‘10억 달러’(1조1058억원)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기부금은 55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김범수 의장의 경우 개인 명의로 보유한 주식이 10조원 이상이기 때문에 기부금은 5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액수를 떠나 ‘재산 절반’을 기부하기로 선언한 이들의 행보가 대한민국 경제사에 여느 기업가들과 차별점이 있는 건 확실하다.



◇ ‘흙수저’의 반란…도대체 왜?


두 김 의장의 기부에 의문을 품는 이도 적지 않다. ‘있는 놈이 더하다’라는 말처럼 이들의 기부에도 사업적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간 두 의장이 보여준 행적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봉진 의장은 지난 2017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0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한 후 꾸준히 그 약속을 지켜왔다. 중·고·대학생 대상으로 장학금 및 정서 지원 사업에 50억원, 배달기사의 생계비, 치료비 지원에 20억원, 홀몸 어르신 지원에 20억원 등 지난 3년간 100억3100만원을 기부했다.

김범수 의장도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만들 때부터 벤처기업 100개를 발굴해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꾸준히 이를 이행했다. 벤처 기부 이외에도 국내 교육 혁신가, 게임인을 꿈꾸는 청소년 등을 꾸준히 살피며 최근 10년 간 기부한 금액은 현금과 주식을 포함해 약 220억원대에 이른다.

김봉진 의장은 기부 서약을 통해 “존 롤스의 말처럼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에 따라 그 부를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소 미국 시인 랠프 윌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서 따온 ‘더 나은 세상’을 프로필 메시지로 쓰고 있는 김범수 의장도 “기업이 선한 의지를 갖는다면 확실히 더 나은 세상이 되는데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며 “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고 강조해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두 의장의 기부가 보여주기식의 ‘기부쇼’가 아닌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본인들의 고통을 후세대가 대물림하지 않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는 것이다.

◇ ‘선약속 후기부’…어디에 쓰일까?

다만 기부금이 어떤 곳에,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먼저 기부를 선언한 후, 구체적인 기부 방식을 결정하는 ‘선약속 후기부’ 형태다. 이 또한 재단 설립, 현금 기부 등 방식을 먼저 정하고 공개하는 그간의 추세와는 다른 형태다.

우선 김봉진 의장의 기부는 ‘교육’에 방점이 찍힐 거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봉진 의장이 기부 서약을 통해 ‘교육 불평등에 관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또 기부과정에서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히며 기부문화를 저해하는 인식적, 제도적 문제를 개선한다는 추상적인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구체적인 기부처가 결정되진 않았지만 김 의장께서 수차례 언급했듯 특히 교육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안다”고 말했다.

김범수 의장도 구체적인 기부처와 방식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그는 기부와 함께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다”며 “점점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가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카카오 관계자에 따르면 이달 말 열리는 사내 구성원 간담회에서 김 의장이 내놓기로 한 기부금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들이 배달의민족과 카카오를 통해 보여준 능력처럼 기부 방식에서도 ‘혁신 DNA’를 보여줄 수 있을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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