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도 VR 헤드셋 쓰자 작품이 되었다”

손택균 기자

입력 2021-02-19 03:00 수정 2021-02-1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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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권하윤 작가전
관람객이 VR 장비 쓰고 나면 안무가 도움 받아 작품 참여
몸동작 대응한 퍼포먼스 펼쳐… “VR와 현실을 연결하고 싶었다”


가상현실(VR) 헤드셋을 착용한 관람객(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VR 시나리오에 따라 보여주는 몸동작에 호응해 안무가들이 즉흥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권하윤 작가는 참여자 모두의 존재가 VR 안팎에서 괴리되지 않도록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미술 작품 전시를 체험하려면 헤드셋 장비 착용 과정을 건너뛸 수 없다. 현재의 VR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이 조건은 때로 작품에의 접근을 망설이게 만든다. 3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권하윤 작가(40)의 ‘잠재적인 마법의 순간을 위한 XX 번째 시도’전은 그 번거로운 착용 행위를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 VR 전시다.

관람료는 무료. 미리 온라인 예약을 하고 반드시 예약시간 5분 전까지 지하 1층 프로젝트 갤러리 앞에 도착해야 한다. 시간을 어기면 입장할 수 없다. 준비시간과 진행시간이 정해져 있는 퍼포먼스 작품이며, 관람객이 주요 요소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진행시간은 35분 내외이고 회당 이용 정원은 5명이다.

작품 핵심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조금 덜 명확히 표현하자면, 관람객이 정시에 갤러리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퍼포먼스를 함께할 안무가 두 명이 바로 곁에서 문득 감춰졌던 존재를 드러낸다. 어리둥절해진 관람객이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확인하는 사이에 전시실 중앙에 놓였던 헤드셋 장비가 하나씩 차례로 분리돼 안무의 소품으로 활용되면서 관람객의 머리에 씌워진다.

장비를 착용한 관람객 곁으로 다가선 안무가는 눈앞에 펼쳐진 VR 상황에 첫걸음을 내디딜 방법을 짤막하게 일러준다. 주변에 나타나는 가상의 표지를 하나씩 천천히 손으로 건드리거나 이동시키면 새로운 이미지 환경이 형성돼 작동하는 방식이다. 재크의 콩나무 덩굴처럼 아름드리나무가 자라나고, 어릴 적 구경했던 작동완구를 닮은 장치가 생겨나 도미노처럼 움직이고, 반딧불이가 무리지어 맴돌고, 머리 위 별자리가 흐르는 일련의 과정에 차츰 몰입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VR 바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기기를 쓰지 않은 다른 관람객이 바라보는 퍼포먼스가 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처럼 허공에서 손을 움직여 눈앞의 이미지를 확인하거나 무언가를 찾는 몸동작 하나하나가 안무가들의 호응을 통해 무대 위 재료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VR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이 관람객에 따라 달라지는 까닭에 안무가들의 동작도 매번 적잖은 변화를 보인다.

VR와 현실 사이를 경계 짓는 요소로 여겨졌던 헤드셋이 퍼포먼스 도입부에 적극적으로 드러남으로 인해 오히려 관람객은 장비의 존재를 빠르게 잊는다. 16일 전시실에서 만난 권 작가는 “가상공간 작업을 할수록 현실과의 연결점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VR를 체험하는 사람이 VR 바깥에서 행하는 몸동작을 교차점으로 삼아 공존하는 두 세계를 연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술관 측은 방역을 위해 전시실과 장비를 매회 소독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12월까지 진행되는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 기획전의 첫 프로그램이다. 서현석, 안정주, 전소정, 김치앤칩스, 정금형, 후니다 킴의 작품이 3월부터 차례로 이어진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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