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車도 없이… ‘유사 새벽배송’ 주의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2-18 03:00 수정 2021-02-18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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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명식당 메뉴 전날 주문받아 장시간 상온 방치 뒤 일반 용기 배달
대형업체의 ‘콜드체인 배송’과 딴판
보랭팩에만 의존해 회 배달하기도


지난해 7월부터 수도권 맛집 배송에 나선 A사는 전국 유명 식당 100여 곳의 메뉴를 오후 6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집 앞에 가져다주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식당의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맛집 새벽 배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사람들이 몰렸다. 하지만 A사에서 서울 유명 식당의 곰국을 주문한 이모 씨(32)는 “얼마나 오래 방치됐을지 모르는 상태로 식은 탕을 데워 먹어야 했는데 위생적으로 괜찮을까 걱정이 됐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온라인 식품 구매와 배달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배송 과정에서 안전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냉동·냉장창고를 탑재한 차량 같은 콜드체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채 식당과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업체가 늘면서 위생 문제 발생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

A사가 배달한 음식은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지에 담긴 채 길게는 수 시간 방치되기도 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살균, 밀봉된 전용 포장이 아닌 일반 용기에 담긴 조리 음식은 즉시 배달이 아니면 부패 위험이 있다”며 “특히 뜨거운 상태로 조리되는 탕류 제품은 상온에서 식으면서 상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최근 회 배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B업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 업체는 오후 3시 이전까지 주문하며 오후 7시까지 수산물을 날것 그대로 신선하게 배송해 준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높아졌다. 100억 원이 넘는 투자도 유치했다.

하지만 배송 시스템은 비(非)식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배달원이 일반 자동차로 집하 구역에서 상품을 받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는 박스 안의 드라이아이스와 보랭팩뿐이다. 분류 중 회를 담은 상품 박스를 길가에 그대로 놔두기도 한다. 수산물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아무리 단거리라도 회를 배송하지 않는 이유도 부패 위험 때문”이라며 “콜드체인 없는 플랫폼 업체에서 상온 분류를 거친 뒤 일반 자동차로 배달하는 것은 신선식품을 다루면서 상상하기 힘든 배송 방식”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2조9624억 원이었던 온라인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지난해 17조3828억 원으로 6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배달시장이 급성장하며 취급하는 음식과 시간대, 배송 형태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은 아직 미비한 상태다.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업체들의 꼼수 영업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A사는 일반식당 음식을 미리 사둔 뒤 밤사이 배송하는 ‘제3자 판매’ 형태로 팔고 있는데 이는 편법이다. ‘식품가공제조업’ 허가를 받고 가정간편식(HMR)이나 레스토랑간편식(RMR)으로 판매해야 하지만 배달업이란 이유로 법망을 피한 것. 업계 관계자는 “이런 식이면 신선도를 전혀 보장할 수 없는 유사 새벽배송이 늘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음식 배달이 각광받는 이유는 신선도를 유지한다는 믿음 때문”이라며 “장시간 유통을 거칠 경우 이 과정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고지됐는지, 품질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규제사항들을 준수했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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