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조작 의혹’ 이항 주가 62%↓… 서학개미 발동동

김자현 기자

입력 2021-02-18 03:00 수정 2021-02-18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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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리포트에 하루새 주가 반토막



“‘존버’(계속 버티기)도 힘들 것 같다.” “중국 주식에 함부로 손대는 게 아니었다.”

17일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곡소리가 이어졌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의 대표적인 드론 기업 ‘이항(EHang·億航)’이 매출 및 기술 조작 의혹에 휩싸이며 하루 만에 주가가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조작 논란으로 나스닥시장에서 퇴출된 중국 ‘루이싱커피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서학개미들도 이항 주식을 6000억 원어치 갖고 있어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의혹 제기 한 방에 반 토막

16일(현지 시간) 나스닥시장에서 이항은 전날보다 62.69% 급락한 46.30달러에 장을 마쳤다. 시가총액도 하루 새 약 25억 달러(약 2조7700억 원) 증발했다.

드론택시 등 대형 드론 제조업체로 주목받은 이항은 2019년 12월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올해 초만 해도 21달러에 불과하던 주가는 이항의 도심항공모빌리티(UAM)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40여 일 만에 124달러대로 6배 수준으로 폭등했다.

이날 이항의 주가 폭락을 이끈 건 글로벌 투자정보업체 울프팩리서치가 발간한 33쪽짜리 공매도 리포트였다. 울프팩리서치는 ‘추락으로 향하는 이항의 주가 폭등’이라는 제목의 리포트에서 이항의 가짜 계약과 기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항이 5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는 중국 업체 ‘쿤샹’이 계약 9일 전에 급조된 기업이며 주소지도 가짜라는 것이다. 이항 본사에는 드론택시 생산을 위한 기초적인 조립 라인도 없었다고 울프팩리서치는 지적했다. 울프팩리서치는 지난해 4월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아이치이’의 매출 조작 의혹을 제기한 곳이다.

이항 측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리포트에 근거 없는 주장, 정보 해석의 실수가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지만 정작 리포트가 지적한 내용에 대해선 뚜렷한 반박을 하지 못해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 한국 개미도 6000억 원 물려 곡소리

이항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이 적지 않아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투자자들은 이항 주식을 5억4948만 달러(약 6000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 중 9번째로 많다. 또 올 들어서만 이항 주식을 9804만 달러(약 1000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이항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서울 여의도에서 ‘K-드론관제시스템’ 비행 행사를 열면서 이항의 드론택시를 사용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졌다.

최근 국내외 증시 활황 속에 검증되지 않은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개미들이 늘면서 손실 우려를 키우고 있다. 특히 중국 기술 기업들의 회계부정 논란이 반복돼 중국 기술주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판 스타벅스’라고 불리던 루이싱커피는 지난해 매출 조작 논란으로 상장 폐지됐고, 중국 온·오프라인 전문교육기관인 ‘하오웨이라이’와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치이도 회계부정 시비에 휘말려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안겼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같은 유동성 장세에서 실체가 불분명한 기업들의 주가도 급등할 수 있다”며 “수익률만 볼 게 아니라 혁신 기업이라고 불리는 곳도 기술과 성장성 등을 꼼꼼히 따져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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