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쇼크’ 부동산대책에 ‘정신쇼크’ 올 판[오늘과 내일/홍수용]

홍수용 산업2부장

입력 2021-02-15 03:00 수정 2021-02-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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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을 땅 못 정한 83만 채 공급계획
무주택자 애타는데 ‘쇼크’가 해법인가


홍수용 산업2부장
‘앞으로 서민들이 많이 찾는 마트에선 공공 주도로 계란을 팔겠다. 당장은 어떤 마트가 대상인지 모르니까 일단 계란을 사지 말라. 추후 정부가 조사해서 ‘서민 마트’를 정하겠다. 해당 서민 마트에서 계란을 이미 산 사람에게는 현금을 주고 계란을 반납하도록 하겠다.’

계란값이 급등한다고 정부가 이런 대책을 추진할 리 없는데 집값 급등에는 이와 비슷한 대책을 내놨다. 2·4공급대책에서 어떤 사람이 대책 발표일인 4일 이후 집을 샀는데 나중에 그 집이 공공 개발지에 포함되면 입주권을 주지 않고 현금 청산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개발지역도 밝히지 않고 집을 사지 말라고 한 것이 재산권 침해 아니냐며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도 꺼림칙했던지 법적 검토를 미리 받았다. 입주권 자체는 추가적인 혜택이고 현금 청산을 적정하게 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2·4대책이 위헌이 아니라는 정부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개발지역을 명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 거래를 제한한 조치는 투기 근절이라는 공익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정부는 항변할 수 있다. 다만 개발지역 발표 직후 거래를 제한하는 통상적인 조치로는 투기를 막을 수 없었는지 검증하면 된다. 낙후지역 주민에게 사업 참여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정책이 부실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과거 정부라고 주민 동의를 완전히 받은 상태에서 택지공급계획을 내놓은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 편에서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어디에 집을 지을지도 모르는 대책을 정부가 내놓은 건 정보 유출에 따른 투기를 우려해서일 것이다. 정보가 새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는 건 자료의 책임자인 정부가 당연히 할 일이지, 사람들을 잠재적 투기꾼으로 여기며 불편하게 만들 일이 아니다. 보안만 완벽하다면 위헌 논쟁은 애초 불필요했다. 미상의 개발 예정지에 집을 사지 말라는 논리는 보안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악의적 투기꾼뿐 아니라 선의의 매수인까지 피해를 볼 수 있는 제도가 타당한지, 그 피해가 납득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설익은 공급대책이 나온 것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장경제에서 보통의 상품은 가격 상승 시에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 가격이 다시 내리는 메커니즘을 반복한다. 예외적으로 집은 가격이 오를 때 수요가 되레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실수요자는 더 비싸지기 전에 집을 사두려 하고 투기꾼은 단기 차익을 노려 매입에 나서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기에는 공급도 줄어든다. 기존 집주인은 가급적 매도 시기를 늦추려 하고 건설회사도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다려 분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주택시장 움직임도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나는 정상 그래프에 가깝다. 그러려면 공급이 꾸준히 늘어 수요자에게 원하는 곳에서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공급 시기를 놓친 현 정부는 ‘공급 쇼크’로 수요자의 심리를 일거에 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정부 스스로 ‘획기적’이라고 부르는 2·4대책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는 정책이다. 사람들은 83만6000채라는 숫자에 한 번 놀랐고 숫자를 뒷받침할 땅이 없다는 데 두 번 놀랐다. 정부가 허풍 섞인 기술을 쓸 때가 있다. 투기 세력이 외환시장을 교란할 때, 민감한 외교 현안을 두고 외국과 줄다리기 협상을 할 때 등이다. 상대방에게 겁을 줘 정부의 패가 실제보다 더 강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때로 국익에 도움을 준다.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자국민에게 쓸 기술은 아니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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