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장 과시할 준비 마친 ‘부드러운 언니’ 배경은 [정윤철의 스포츠人]

정윤철기자

입력 2021-02-12 12:00 수정 2021-02-12 12:16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팬들 사이에서 팬클럽을 부활시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해요. 노익장을 과시해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7년 만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복귀하는 배경은(36)은 전화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을 앞둔 각오를 밝혔다. 여고생이었던 2001년 KLPGA 선수권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최연소 메이저대회 챔피언(16세 4개월 20일)에 등극했던 것을 비롯해 투어 통산 3승을 기록한 그는 2014년 은퇴했다. 이후 코스 해설과 레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방송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열린 2021 KLPGA 정규투어 시드순위전에서 31위를 기록하며 투어에 복귀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7년 만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복귀하는 배경은. 그는 “신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올해 내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KLPGA 제공



● 내가 있어야 할 곳

“15세 때부터 프로 생활을 하다보니 훈련과 대회 참가가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등 일반인들이 그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해 아쉬웠다.” 배경은은 14년 간 정든 필드를 떠나기로 결정했을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 속에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배경은에게 ‘투어를 벗어나 있던 지난 6년 동안에는 일상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느냐’고 물었다. 그는 “성악과 피아노 반주 등 취미 활동을 하며 충분히 즐겁게 지냈다. 또한 헤어메이크업을 배우고 스피치 학원도 다니며 자기 계발에도 힘을 쏟았다”고 말했다.

배경은은 골프와 완벽히 단절된 삶을 살지는 않았다. 코스 해설을 하며 후배들의 우승 장면을 옆에서 지켜봤고, 레슨의 질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라운딩을 소화했다. 그는 계속해서 골프채를 잡고 있었지만 마음가짐은 은퇴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은퇴 전에는 골프가 힘들고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 성적 부담 없이 코스에 나서다보니 내 캐릭터가 달라졌다. 내가 이렇게 밝고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고 말했다.

배경은은 지난해 여름에 투어 복귀를 결심했다. 그는 “편안한 심리 상태에서 골프를 할 수 있게 된 내가 다시 KLPGA투어로 돌아가면 어떤 모습과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지가 궁금했다”면서 “KLPGA투어라는 울타리 안이 원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청 선수 등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었지만 과감히 시드순위전 참가를 결정했다. 배경은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초청 선수로 나서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차곡차곡 준비해 시드순위전에 참가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2001년 KLPGA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배경은이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올 시즌 목표는 2승”

배경은은 올해 목표에 대해 “꿈은 항상 크게 가져야 한다. 2승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6년 동안 KLPGA투어에서 실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자신감이 있는 눈치였다. 그는 “투어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성공적인 복귀를 위해 어떤 연습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필드 레슨을 위해 꾸준히 라운딩을 해온 덕분에 드라이버 비거리는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는 “선수 출신이다 보니 대회가 아닌 상황에서도 코스에 나가면 내 경기력이 떨어지고 있는지, 좋아지고 있는 지를 세심하게 체크했다. 스윙교정을 해서 비거리도 (과거에 비해)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거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40~245야드 정도였던 그는 “요즘에는 250야드 정도의 드라이버 비거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배경은은 15일부터 제주도에서 2주간 쇼트 게임과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KLPGA투어는 4월 8일 롯데스카이힐 제주에서 열리는 롯데렌터카 여자 오픈으로 2021시즌의 막을 올린다. 배경은은 올 시즌 투어에 참가하는 선수 중 최고령이다. 그는 “공을 잘 칠 자신은 있는데 4라운드 동안 코스를 잘 걸어 다닐 자신은 없다”며 웃었다. 그는 “그동안 다이어트를 위해 일주일에 3회 씩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해왔지만 피로 회복 속도는 젊은 선수들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 정신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체력 안배와 회복에 많은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 배경은은 골프 레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했다. 그는 “레슨을 위해 꾸준히 라운딩을 했다. 부담 없이 골프를 즐기니 오히려 기량이 더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이키 골프TV 캡처



● 언니의 인생 3라운드

배경은은 올 시즌 대회에서 같은 조에 편성돼 경쟁해보고 싶은 후배로 임희정(21)과 박현경(21)을 꼽았다. 2019시즌에 데뷔해 KLPGA투어 3년 차가 된 임희정과 박현경은 각각 투어 통산 3승, 2승을 거두고 있는 떠오르는 스타들이다. 배경은은 “지금 최고의 기량을 펼치고 있는 선수와 같은 조로 경기하면서 그 선수와 나의 골프를 비교해 보고 싶다. 내게는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배우는 것이 언제나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그의 투어 복귀 소식을 듣고 많은 후배들이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그 중에는 투어 성적이 좋지 못해 은퇴를 고민 중인 후배들도 있었다. 배경은은 “은퇴를 고민 중인 후배들에게 ‘극한의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가 어쩌면 네가 원하는 결과에 최대한 다가선 순간일 수도 있다. 곧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니 조금만 더 힘내라’라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필드로 돌아온 그는 후배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동시에 ‘부드러운 언니 골퍼’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공을 잘 치는 멋진 선배보다는 좋은 선배 역할도 하고 싶다. 힘든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밥도 많이 사주고,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조언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경은은 인생을 4라운드로 봤을 때 자신은 3라운드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3라운드는 최종 4라운드의 반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는 라운드다. 배경은은 “은퇴 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필드에서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내뿜고 싶다. 인생의 3라운드가 최종 4라운드에서 행복한 결말을 위한 멋진 터닝 포인트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