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백신의 반전[횡설수설/박중현]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1-02-10 03:00 수정 2021-02-10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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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그제 러시아제 ‘스푸트니크V’ 백신과 관련해 “다양한 백신에 대해 문을 열어놓고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러시아, 중국 백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 영국 백신의 공급 차질로 백신 쟁탈전이 심화하면서 세계 각국 정부로선 ‘꿩 대신 닭’이라도 필요한 상황인데 꿩 못잖은 닭이란 평가까지 나오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작년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말레야 연구소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이름도 냉전시대 로켓기술 경쟁에서 미국 기선을 제압한 첫 인공위성에서 따온 ‘스푸트니크V’로 지었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서구 전문가들은 “이 백신을 맞는 건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최근 국제의학지에 공개된 임상시험 결과 스푸트니크V의 예방 효과는 91.6%로 미국 백신들 못지않고 2∼6도의 상온 보관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값도 20달러(약 2만2300원)로 화이자, 모더나의 절반 밑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스푸트니크V 자료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푸틴과도 대화했다”고 말해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백신 접종 속도에서 이스라엘을 제치고 최근 1위에 오른 아랍에미리트(UAE)의 비결은 중국 백신 시노팜이었다. 작년 6월부터 시노팜 임상시험을 자국 내에서 진행한 UAE는 80% 정도의 예방 효과가 확인되자 12월 접종을 시작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협조를 받아 지난해 11월 접종한 것으로 알려진 백신도 시노팜일 가능성이 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나오긴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백신 지원을 무기로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백신 개발은 제약 바이오 화학 등 기초과학 역량의 종합 시험대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지난해 발표한 자연과학 연구 성과 지표에서 중국은 미국에 이은 2위로 9위인 한국을 크게 앞섰다. 러시아는 18위지만 구(舊)소련 시절 쌓은 기초과학 수준은 여전히 톱클래스로 평가된다. 게다가 백신 개발은 환자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고, 마지막 단계엔 실험 중인 백신을 접종한 뒤 감염 위험을 감수할 인원까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난해 한국 정부가 ‘K방역’ 성과를 자랑하면서 국산 백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키울 때 전문가들 사이에서 “헛된 기대로 끝나기 쉽다”는 평가가 나왔다.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이 확실하게 입증되고, 멈춰선 경제와 일상의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굳이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를 가릴 필요는 없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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