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평정한 장터… 가게 팔고 떠나기도 힘들어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2-06 03:00 수정 2021-02-06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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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이커머스 시장의 세대교체]해외선 유례없는 신선식품 배달
쿠팡 1위로 만들며 ‘승자독식’
네이버도 물류취약 단점 줄이려 CJ대한통운 2대 주주 자리잡아
원조격인 옥션-G마켓 매각 시도… 11번가-티몬은 대규모 영업적자



연초부터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 대형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이베이가 지난달 G마켓, 옥션, G9 등 서비스를 보유한 이커머스 기업 이베이코리아의 매각을 발표했고 대주주의 엑시트(exit·투자 회수) 수요가 있는 티몬도 잠재적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배달의민족’에 이은 2위 배달앱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도 경쟁당국에 의해 강제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왔다. 이들의 몸값만 10조 원에 이른다. 유통업계에서는 “급격하게 성장 중인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성장세만큼이나 치열한 출혈경쟁 때문에 수익을 보장하기 어려워진 만큼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여전히 견고한 G마켓-옥션, 매각 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61조1234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1% 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소비 증가로 성장세가 한층 가팔라졌다. 빠른 성장만큼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베이코리아가 매물로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이베이가 이베이코리아 매각을 결정한 배경에는 이베이의 주식 4%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격이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쿠팡, 네이버가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2강’으로 떠오르고 이베이코리아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헤지편드의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G마켓, 옥션 등을 가진 이베이코리아의 몸값은 최대 5조 원으로 평가된다. 20년 전인 2001년 미국 이베이의 한국 옥션 인수로 설립된 이베이코리아는 2009년 인터파크의 G마켓까지 약 4800억 원에 인수하며 국내 이커머스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합병 승인 이후 한 차례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 2019년에도 매출 1조954억 원, 영업이익 615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2, 27% 증가했다. 거래액은 2019년 17조 원, 지난해에는 19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베이코리아는 전형적인 오픈마켓 모델로 사업을 하고 있다. 판매자가 이베이코리아의 옥션이나 G마켓, G9 등에 입점하고 소비자가 구매하면 이를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보내주는 방식이다. 오픈마켓의 경쟁력은 상품의 구색과 판매자들 간의 경쟁을 통한 낮은 가격, 이를 통한 소비자 유입의 선순환이다. 11번가와 티몬, 위메프 등 후발 주자들까지 사업모델로 택한 오픈마켓은 한국 이커머스의 ‘표준 방식’이었다.

○ ‘로켓배송’ ‘새벽배송’… 치열한 각축장

변화의 바람은 쿠팡에서 시작됐다. 2014년 3월 24일 쿠팡이 ‘로켓배송(당시 서비스명 와우딜리버리)’을 시작했다. 쿠팡의 자체 물류센터, 자체 배송직원, 그리고 ‘직매입’은 이커머스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단순한 중개를 넘어 직접 물건을 배달하고 상품 판매까지 시작한 것이다. 직접 물건을 매입해 판매하는 쿠팡의 매출은 이베이의 7배에 이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입점 수수료를 받는 게 아닌 실제 물건을 사고파는 주체가 되면서 엄청난 거래·물류 데이터를 손에 쥐게 되고 이는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이커머스 서비스를 만드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모델은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새로운 룰이 되고 있다. 신세계 SSG닷컴, 새벽배송 선두 업체 마켓컬리도 직매입, 직배송을 한다. 신선식품까지도 직배송하는 물류 시스템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K이커머스’만의 저력이다.

네이버는 오픈마켓 사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쇼핑 부문을 대폭 강화하고 있지만 압도적인 검색 플랫폼, 콘텐츠 경쟁력이 쇼핑 부문의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베이코리아와는 차이점이 있다. 네이버쇼핑 거래액은 2019년 20조 원을 넘어섰고 지난해는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색 플랫폼을 기반으로 단숨에 이커머스 강자로 자리 잡은 네이버는 최근 막강한 자금력을 통해 국내 최대 물류 기업인 CJ대한통운의 2대 주주가 됐다. 경쟁사인 쿠팡 등에 비해 약하다고 평가받는 물류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통한 배송 시스템과 직매입을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 등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갖추지 않고서는 이커머스 업계에서 승기를 잡기 힘들게 됐다”며 “결국 선두 업체의 승자독식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승자 독식 승부에서 패해 나오는 매물들

현재 이커머스 시장에 나온 매물들은 시장의 급격한 진화 속에서 선두 그룹에서 밀려난 업체들이다. 연이어 대형 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이 때문에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가격을 대폭 낮추지 않으면 매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오픈마켓 모델로는 네이버와 쿠팡이 주도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더 이상 승기를 잡기 힘들어졌단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베이코리아처럼 오픈마켓 위주 이커머스 서비스 11번가는 지난해 98억 원의 영업적자로 돌아섰다.

이베이코리아에 대한 이런 평가는 티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쿠팡, 위메프와 함께 3대 소셜커머스 업체로 출발한 티몬도 현재는 오픈마켓 방식의 이커머스 사업을 하고 있다. 티몬의 최대주주는 2015년 투자한 영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애쿼티파트너스(AEP)다. 이들의 인수 5년이 넘어서면서 기업공개(IPO)나 매각을 통해 엑시트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건 IPO다. 티몬 측은 “현재 IPO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 중이고 시기는 올 하반기(7∼12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대형 매물 새 주인 찾기 난항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티몬은 2017년 이미 상장을 추진했다가 적자에 발목을 잡혀 무산된 바 있다. 자본 잠식 상태인 티몬의 부채 총계는 2019년 6581억 원에 달한다. 상장도 어렵지만 매각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티몬처럼 소셜커머스로 시작해 오픈마켓으로 사업 모델을 바꾼 위메프도 지난해 매출액이 3864억 원으로 전년보다 17% 줄었고 영업손실도 540억 원을 냈다.

예상과 달리 인수전이 삐걱대고 있는 배달앱 요기요의 매각 역시 선두 업체를 중심으로 양극화되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요기요는 모회사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강제 매각 결정으로 시장에 나오게 됐다. 배달업계 2위 업체인 만큼 인수 후보군으로는 네이버, 카카오뿐 아니라 신세계, 롯데 같은 전통적 유통 강자들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던 기업가치가 선뜻 나서는 매수자가 없어 1조 원대로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IB 업계에서 나온다. 한 IB 관계자는 “압도적 선두인 배민과 매서운 추격세인 쿠팡이츠 사이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배달앱 시장이 역시 결국 ‘머니게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쿠팡이 이르면 올 1분기(1∼3월) 말 나스닥 상장에 나서 성공할 경우 쿠팡이츠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배달앱 업계 관계자는 “누가 인수하든 70%대 점유율을 가진 1위 업체 배달의민족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뉴욕증시에 상장한 미국 1위 배달앱 업체 ‘도어대시’의 한국 진출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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