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확진’ 받아도… 격리-역학조사 어렵고, 잠적땐 ‘시한폭탄’

지민구 기자 , 이상환 기자 , 김소영 기자

입력 2021-02-02 03:00 수정 2021-02-0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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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사각지대’ 노숙인 대책은…
경찰, 잠적 3명중 2명 찾아 인계
전국 노숙인 1만1000명 ‘발등의 불’



노숙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된 후 잠적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해 지역사회 전파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숙인의 경우 대부분 연락 수단이 없고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데다 동선 파악이 어려워 방역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에도 방역당국이 손놓고 있는 사이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방역당국은 노숙인들의 확진 여부를 현장에서 바로 확인해 조치할 수 있도록 신속항원검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현재 노숙인 지원시설인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노숙인 52명과 직원 2명 등 총 54명이다. 노숙인 3명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1일 이들 중 2명을 찾아내 방역당국에 인계했지만 A 씨(57)는 아직도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과 방역당국의 설명을 종합하면 노숙인 시설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가 지원단체를 통해 진단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노숙인들 상당수는 연락 수단이 없어 검사를 받을 때 지원단체 직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낸다. 문제는 검사를 받은 뒤 정해진 시설로 가지 않아 행방을 알 수 없는 노숙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역당국이 확진된 일부 노숙인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격리 조치와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 주거지가 없다 보니 휴대전화를 갖고 있더라도 A 씨처럼 연락을 받지 않으면 소재 파악이 어렵다. 노숙인 확진자 중에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소재 파악이 안 되는 사이 지역사회로 전파될 우려가 높다.

하지만 방역당국과 지자체는 확진 판정을 받은 노숙인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다. 서울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연락이 두절된 노숙인은 얼굴 등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직접 찾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해진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팀장도 “노숙인 밀집지역으로 오지 않고 거리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으면 확진자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까지 동원돼 확진된 노숙인을 뒤늦게 찾아낸 뒤에도 문제는 남는다. 역학조사를 통해 동선을 파악하거나 밀접접촉자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신용카드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노숙인이 거의 없어 위치추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관계자는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의 경우 면접조사와 지원단체를 통해 동선을 파악하지만 일반 역학조사보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전국의 노숙인은 1만1000여 명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8일부터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등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전수 검사에 착수했다. 방대본도 전국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코로나19 선제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1일 브리핑에서 “노숙인은 코로나19 검사 뒤 별도로 격리돼 지낼 곳이 없는 경우가 많아 30분 안에 결과가 나오는 신속항원검사 방식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숙인 지원단체 등은 방역당국과 지자체의 대응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집단감염 사태가 터진 뒤에야 나온 뒷북 대책”이라며 “노숙인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격리된 채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민구 warum@donga.com·이상환·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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