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자동차와 비행기, 럭셔리 모빌리티 세계를 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2021-01-29 03:00 수정 2021-01-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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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비행기 엔진 제작… 벤틀리 창업자는 항공기 기술자
세계 첫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비행 50돌기념 스포츠카 생산도
엠브라에르-포르쉐 손잡고…비행기-차 10개 세트 한정판매


엠브라에르 페넘 300E의 조종석에서 영감을 얻은 요소들로 실내를 꾸민 포르쉐 911 터보 S. 엠브라에르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와 비행기는 탄생 초기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을 거듭해 왔다. 자동차는 땅에서, 비행기는 하늘에서 성능과 효율을 추구해 왔다. 특히 역사 초기에는 기술 발전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도전적 이미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자동차를 통해 입증된 엔진 기술은 비행기의 동력원을 만드는 데 응용되기도 했고, 비행기의 구조 설계와 소재 기술은 자동차의 성능 향상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 밖에도 알루미늄 합금이나 마그네슘 합금과 같은 경량 소재, 디스크 브레이크와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인 ABS, 터보차저와 슈퍼차저 등 엔진 성능을 높이는 장치 등 자동차의 여러 기술은 항공기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트 시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은 비행기 디자인은 테일핀과 같은 요소에서부터 공기역학적 차체 형태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디자인 변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

이름난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들은 20세기 초반만 해도 비행기와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었다. 롤스로이스는 자동차 부문이 분리되기 전까지 비행기 엔진을 함께 생산했고, 벤틀리를 창업한 월터 오웬 벤틀리는 원래 항공기 엔진 기술자였다. 부가티를 창업한 에토레 부가티도 항공업계 선구자들과 교류하며 비행기의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자동차에 반영하곤 했다. 마이바흐가 1920, 30년대를 풍미한 체펠린 비행선의 엔진을 만든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행기와 자동차의 성능 격차가 커진 이후로는 이와 같은 관계가 기술이나 디자인 같은 요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특히 럭셔리 자동차에서는 비행기의 이미지를 담으려는 시도가 새로운 방향으로 펼쳐지고 있다. 대중적 자동차와 비행기에서는 불가능한, 하늘과 땅에서 모두 호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애스턴마틴이 2019년에 선보인 DBS 슈퍼레제라 콩코드가 좋은 예다. 콩코드는 영국과 프랑스가 합작해 만든 세계 최초의 상용 초음속 여객기의 이름이다. 2003년을 마지막으로 운항을 중단했지만, 콩코드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초음속 비행의 놀라움과 하늘에서 누리는 호화로움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호화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첫 비행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애스턴 마틴 DBS 슈퍼레제라 콩코드. 에스턴 마틴 제공
이런 콩코드의 이미지를 럭셔리 스포츠카에 담은 것이 DBS 슈퍼레제라 콩코드였다. 콩코드의 첫 비행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 차에는 특별한 치장이 돋보인다. 차체 옆 공기 배출구에 콩코드를 내려다본 모습을 형상화해 넣은 것을 비롯해 차체 외부 주요 공기역학적 요소에 비행기 소재를 상징하는 알루미늄 합금을 썼다. 또한 콩코드를 운영했던 항공사 브리티시 에어웨이스의 상징색을 차체 곳곳에 넣었고 콩코드의 항공기 등록번호를 차체 측면에 붙였다.

실내에도 좌석 표면에 콩코드 로고를 넣었고, 운전석 선 바이저에는 콩코드 객실에 있었던 속도계와 고도계 그래픽을 수놓았다. 스티어링 휠 뒤의 변속 패들은 콩코드 엔진 부품으로 만들었고, 알칸타라 소재를 쓴 천장 마감재에는 초음속 비행 때 생기는 충격파를 형상화한 그래픽을 넣었다. 단 열 대만 한정 생산된 이 차는 콩코드가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착륙한 영국 브리스틀에 있는 애스턴 마틴 딜러를 통해서만 판매되었다.

애스턴 마틴이 디자인에 참여한 럭셔리 헬리콥터 에어버스 ACH130. 에어버스헬리콥터 제공
애스턴 마틴은 전에도 비행기에서 영감을 얻은 특별 한정 모델을 만든 바 있다. 영국 공군 곡예비행단의 이미지를 담은 뱅퀴시 S 레드 애로우즈 에디션, 제2차 세계대전의 명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V12 밴티지 S 스피트파이어 80 등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애스턴 마틴은 에어버스 코퍼레이트 헬리콥터(ACH)와 협업해 헬리콥터 ACH130 애스턴 마틴 에디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헬리콥터는 애스턴 마틴이 실내를 디자인하고 호화롭게 꾸미는 한편, 기체색과 무늬도 특별하게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비행기 업체와 자동차 업체가 적극 협업한 사례도 있다. 브라질에 뿌리를 둔 항공기 제조업체인 엠브라에르가 지난해 초에 발표한 ‘틀엣’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엠브라에르는 소형 여객기 시장에서는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업체다. 그러나 개인 전용기 시장에는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 뛰어들었고, 후발 주자로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와의 협업이었다.

엠브라에르가 손잡은 브랜드는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쉐로, 두 브랜드는 ‘듀엣’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비행기와 럭셔리 카를 말 그대로 ‘짝짓기’했다는 점이 참신하다. 두 업체의 가장 호화로운 모델인 엠브라에르 페넘 300E와 포르쉐 911 터보 S가 그 주인공이다.

듀엣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두 회사의 제품은 여러 특징을 공유한다. 비행기의 특징적 요소를 자동차 디자인에 반영하고, 자동차의 특징적 요소도 비행기 실내에 담았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기체와 차체를 같은 분위기의 색으로 칠한 것이다. 실내 역시 고급스러운 가죽 내장재와 더불어 색과 패턴을 공유한다. 아울러 비행기 외부에 표시되는 항공기 등록번호를 911 터보 S의 뒤 스포일러에 똑같이 넣었다. 이는 비행기와 자동차가 한 쌍을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협력을 상징하는 로고도 만들었다. 로고는 페넘 300E의 윙렛(날개 끝의 꺾인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했다. 이 로고는 실내 좌석에 들어가면서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로고는 페넘 300E에는 양각으로, 911 터보 S에는 음각으로 처리되었다. 이는 비행기의 양력과 자동차의 다운포스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비행기의 수평꼬리날개, 자동차의 스피커 그릴 등에도 로고가 들어간다.

럭셔리 스포츠카 포르쉐 911 터보 S의 소재와 디자인을 반영한 엠브라에르 페넘 300E의 실내. 엠브라에르 제공
듀엣 프로그램으로 제작되는 911 터보 S는 페넘 300E 구매자에게만 판매된다고 한다. 열 쌍이 제작되어 한정 판매되고, 인도는 올해부터 시작된다. 구매자는 두 브랜드의 협업을 기념해 비행기 조종석에서 영감을 얻어 포르쉐 디자인이 만든 전용 여행용 가방과 더불어 티타늄 케이스 손목시계도 함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여러 이동수단은 모빌리티라는 이름으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하늘과 땅에서 따로 경험했던 럭셔리의 세계가 하나의 모빌리티로 끊김 없이 이어지는 시대가 다가오는 셈이다. 물론 새로운 모빌리티의 시대가 열리더라도 자동차와 비행기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할 테고, 보편적 이동과 구별되는 럭셔리한 경험을 추구하는 두 장르의 협업은 이어질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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