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필드를 뜨겁게 달구고 싶은 ‘낚시 골퍼’ 최호성[정윤철의 스포츠人]

정윤철기자

입력 2021-01-28 07:00 수정 2021-01-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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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골퍼’ 최호성(48)의 스윙은 ‘골프의 정석’과는 거리가 멀다. 스윙을 할 때 왼쪽 다리를 축으로 오른쪽 다리를 들고 빙그르르 돈다. 이 과정에서 허리가 뒤로 꺾이기도 한다. 스윙 동작이 낚싯대를 잡아채는 동작과 비슷해 ‘낚시 스윙’으로 불린다.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는 독특한 스윙이 3년여 전부터 국내외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최호성은 유명 인사가 됐다. “사람 얼굴이 모두 다르듯, 골프 스윙도 다 다르다”고 말하는 최호성의 스윙이 정형화된 ‘교과서 스윙’에 억눌려 있던 골퍼들에게 해방감을 안긴 것이다. 전 세계 골프팬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유명 선수들이 최호성의 스윙 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는 “최호성의 동작은 놀랍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 허리가 아픈 느낌”이라고 말했다.

비거리를 늘려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 낸 ‘세상에 없던 스윙’ 덕분에 최호성은 PGA투어 대회에 초청 선수로 참가해(2019년) 난생처음 미국 땅을 밟기도 했다. 당시 미국 팬들은 최호성을 향해 “가자!”라고 한국말로 외치는 등 열띤 응원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서커스 같은 스윙이지만 최호성의 스윙은 승리를 향한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1973년생으로 소띠인 최호성은 소의 해인 2021년에도 낚시 스윙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각오다. 최호성은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생애 다섯 번째 소의 해가 시작됐다. 나만의 개성을 살려 올해도 많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개성 넘치는 낚시 골퍼가 되기까지 최호성이 걸어온 길과 미래의 포부를 들어봤다.

오른쪽 다리를 들고 빙그르르 도는 독특한 스윙으로 골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호성. 스윙 동작이 낚싯대를 잡아채는 동작과 비슷해 ‘낚시 스윙’으로 불린다.



●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골프

최호성에게 “진짜 낚시를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린 시절 집(경북 포항)에서 바다까지의 거리가 30m정도였다. 눈앞에 보이는 게 바다여서 낚시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때만해도 프로 골퍼가 돼 낚시 스윙까지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10대 시절 해녀인 어머니가 성게를 잡아오면 그는 알을 긁어내는 일을 했다.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당시 한 마리에 30원이던 실뱀장어 잡기에 매달리기도 했다. 최호성은 “성게를 열심히 다듬으면서 집중력을 키웠고, 실뱀장어를 잡으면서 최선을 다해 온 힘을 쏟아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부모님처럼 바다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던 최호성은 포항 수산고 3학년 때 참치 해체 실습을 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첫 마디를 잃어 4급장애 판정을 받았다. 최호성은 “꽁꽁 얼어있는 참치에 장갑이 들러붙는 바람에 손이 전기톱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도 겨울철에 보습이 안 되면 엄지손가락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나 애를 먹을 때가 있다고 한다.

이 사고로 최호성의 인생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장애 탓에 더는 참치 하역장에서 일할 수 없었고 군 입대도 좌절됐다.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포항제철 기계정비, 광산에서 돌 캐기, 슈퍼마켓 배달, 자판기 관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던 1995년에 ‘숙식 제공’이라는 말에 이끌려 찾아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최호성은 “당시 골프장 사장님이 모든 직원들이 골프를 할 수 있어야 손님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일과 이후에는 자유롭게 골프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덕분에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골프채를 잡아보겠나’라는 생각으로 연습을 했는데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소의 해였던 1997년에 ‘골프로 어떻게든 성공을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이 골프공을 치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거나, 골프 잡지에 있는 스윙 사진을 보며 독학으로 골프를 익힌 그는 1999년에 세미프로에 합격했다. 2001년 한국프로골프(KPGA) 2부 투어에서 상금왕에 오르며 두각을 드러냈고, 2004년에 1부 투어(KPGA 코리안 투어)에 입성해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코리안 투어에서 통산 2승을 올린 최호성은 2012년부터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 진출해 3번의 우승을 달성했다.

최호성은 골프 선수의 길을 선택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호성아! 너무나 대견한 선택을 했다. 네가 그 때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최호성은 포항 수산고 3학년 때 참치 해체 실습을 하다 오른쪽 엄지손가락 첫 마디를 잃어 4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 낚시 골퍼에게 월척이란

최호성은 40대에 접어들어 비거리가 줄어들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낚시 스윙’을 개발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유연성이 떨어졌다. 백스윙을 할 때 20대 골퍼들처럼 팔을 높이 올릴 수가 없었다. 팔 높이를 낮추는 대신 몸의 회전력을 높여 비거리를 늘리는 동작을 개발했다”고 했다. 동작이 큰 스윙인 만큼 타석이 좁은 실내연습장에서는 옆 사람을 골프채로 칠 위험도 있어 훈련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최호성은 “1년에 25, 26개 대회에 출전한다. 이때마다 넓은 필드에서 집중적으로 스윙 연습을 반복해 정확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스윙 스피드와 파워 향상을 위해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는 최호성은 “현재 최대의 힘으로 드라이버 티샷을 하면 비거리가 300야드 정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낚시 스윙이 아닌 일반적인 스윙으로 티샷을 하면 비거리가 어느 정도 나올까. 최호성은 “캐리 거리(공이 날아간 거리)가 7, 8야드 정도 줄어든다. 이 경우 장애물이 있거나 워터 해저드를 넘겨야 하는 홀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낚시 스윙을 하지 않으면 공이 안 맞는다. 내게는 낚시 스윙이 홀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주 무대인 일본 투어 대신 코리안 투어에서 활동했다. 올해는 일본 투어에 복귀할 계획이지만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외국인 입국 금지가 계속될 경우에는 지난해처럼 코리안 투어에 나설 생각이다.

지난해 그는 코리안 투어에서 톱10에 한 번도 진입하지 못했다. 최호성은 “코로나19와 부친상 여파 등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 대회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호성은 코리안 투어 시드 카테고리 중 ‘상금 순위 70위’ 안에 들어 올해도 대부분의 코리안 투어 대회를 나설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최호성은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돼 갤러리들이 골프장을 찾아올 수 있게 되면 더 멋진 플레이로 성원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처럼 PGA투어 대회 초청장을 받는다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최호성은 “미국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은 언제나 영광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골프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말했다.

최호성에게 12년 뒤인 2033년 소의 해에는 어떤 모습의 골퍼가 되어있기를 바라느냐고 물었다. 최호성은 “그 때는 나이가 60세인데…. 급변하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40세에 접어든 뒤 낚시 스윙을 만들어낸 것처럼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환경에 맞춰 변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호성은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으로 대회가 열려 아쉬웠다. 올해는 많은 갤러리들 앞에서 낚시 스윙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최호성의 애창곡은 가수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다. 정석 스윙이 아니라는 혹평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스윙으로 골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자신의 골프 인생이 노랫말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이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낚시 골퍼 최호성은 많은 팬들 앞에서 힘차게 자신만의 스윙을 하는 모든 순간에 월척을 낚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낀다. 그는 “내 실력과 기량이 뒷받침되는 한 계속해서 필드를 누비면서 나만의 골프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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