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넘치는 탑과 초승달 궁궐… 황금기 사비백제의 영광 꿈틀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입력 2021-01-23 03:00:00 수정 2021-01-23 15: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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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충남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의 풍수
능산리고분군의 사찰 터
지형 안배한 궁궐 터
역사가 흐르는 백마강


1400여 년 전의 백제 궁궐을 재현해놓은 백제문화단지(부여군 규암면). 문헌 고증 등을 통해 사비백제의 궁궐인 사비궁, 목탑을 갖춘 사찰 등이 복원돼 있어 백제문화를 즐길 수 있다. 부여군 제공

《백제 고도(古都) 부여의 역사를 상징하는 정림사지오층석탑.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사비(부여)백제 도성이 온통 불바다가 됐을 때도 살아남은 국보 제9호 유적이다. 이 탑을 찾았을 때는 때마침 내리는 눈으로 탑 전체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백설은 오해와 왜곡으로 점철된 백제 역사를 백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라는 신호인 듯했다. 백제의 참역사를 증언하는 석탑에서부터 부여여행을 시작한다.》




○백제 왕기 솟아나는 정림사지오층석탑

사비백제 당시 도성 한복판에 건립된 정림사 경내의 핵심 지점에 자리한 정림사지오층석탑.
나무를 깎아놓은 듯 세련되면서도 장중한 정림사지오층석탑(8.33m) 탑신부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남긴 글이 기둥 4면을 둘러가며 빼곡히 새겨져 있다. 이름하여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즉 당나라가 백제를 정벌했다는 기념비다. 여기에는 깜짝 놀랄 만한 문구도 있다. 멸망 당시 사비백제는 24만 호(戶)에 620만 인구를 가졌고, 지방관을 파견하는 성만 무려 250개를 거느린 대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백제는 패망 직전까지도 대단한 국력을 자랑하는 나라였음을 적국 장수(將帥)가 공개적으로 밝혀놓은 것이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사비백제 당시 도성 한복판에 건립된 정림사(고려 때 불린 사찰 이름) 경내에서도 가장 핵심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왕실 또는 나라의 상징적 존재였던 이곳은 백제의 융성을 비는 기도터로 활용됐다.

실제로 백제인의 꿈을 담은 이 석탑 주변을 탑돌이 하거나 탑 한쪽에 가만히 서 있다 보면 강렬한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다. 명당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기운 현상이다. 이 탑의 왕기(旺氣)는 탑 뒤의 북쪽 강당 터와 탑 앞의 남쪽 연못(연지)으로도 이어진다. 3곳의 명당 혈(穴)에 중요 건물을 배치한 백제인들의 뛰어난 풍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강당 터는 고려시대의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을 안치한 전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시대를 초월한 불교 미술을 덤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있다. 사비백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538년 백제 성왕은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새로운 백제를 표방했다. 국호는 ‘남부여’. 대륙에 있던 고조선의 적장자 부여를 계승한 유일한 나라임을 선포했다. 한반도에서 ‘부여’라는 단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후 사비백제는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백제 금동대향로
사비백제의 황금기를 알려주는 상징물이 백제금동대향로다.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연꽃 모양의 몸체를 받쳐주고 활짝 날개를 펼친 봉황이 산봉우리 모양의 뚜껑 위에 장식된, 모양 그대로 용과 봉황이 새겨진 향로다. 우리나라 금속공예사를 통틀어 한 번도 보지 못한 진귀한 예술품이자, 중국에서 유명한 한나라 시대 박산향로보다 조각 수법이 뛰어난 국보(제287호)로 평가받는다.

박물관에 전시된 백제금동대향로의 출토지인 부여 능산리고분군으로 발길을 옮긴다. 1300여 년간 이 향로를 원형 그대로 간직해 온 터 역시 예사로운 땅이 아닐 것이다. 향로는 왕릉급 무덤인 능산리고분군의 왼편 사찰 터(능산리사지)에서 1993년 발견됐다. 능산리사지에는 향로가 출토된 곳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지도 간판이 설치돼 있다.

능산리사지 또한 전체적으로 빼어난 기운을 간직한 터다. 정림사지처럼 백제 고유의 가람 배치 양식인 1탑1금당(탑 하나에 금당 하나) 구도를 하고 있는데, 금당지가 정확히 명당 혈에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왕들의 명복을 비는 의례에 사용됐을 향로 또한 원래는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부소산의 궁궐터가 초승달 모양인 이유는?

해발 106m 정도의 부소산으로 연결되는 산책로. 설경이 일품이다. 부여군 제공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기 전 사비도성은 어땠을까. 다사다난했던 웅진(공주)백제 시절을 마감하고 도읍을 옮긴 성왕은 계획도시를 건설했다. 전체 지역을 방위에 따라 5부로 구분하고, 부마다 5개의 주요 거리를 뜻하는 5항을 두었다. 이렇게 되면 사비도성은 가로 세로로 도로가 구획되는 ‘바둑판형’ 선진 도시가 된다.

중국의 역사서 ‘북사’는 당시 백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1만 가구가 운집한 도읍지는 신라, 고구려, 왜, 중국 등 외국 사람들도 섞여 사는 국제도시였다. 백제인들은 문(文)과 무(武)를 고루 중시했고 의약, 상술(相術), 풍수 등 음양오행법에도 능했다. 나라에서는 그해의 수확 사정에 따라 세금을 걷으면서 민심을 얻었다. 이웃 나라와 전쟁만 없다면 태평성대의 시대나 다름없었다.

부소산 자락 아래의 궁궐 터 또한 이채롭다. 부여의 주산인 금성산에 올라 바라보면 부소산 아랫자락이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다. 실제로 부여여고를 중심으로 왼편의 관북리유적지와 오른편의 쌍북리유적지를 연결 지으면 초승달 지형을 이룬다. 관북리는 일찌감치 궁궐지로 추정돼 ‘관북리유적’으로 지정됐다. 최근 쌍북리에서도 궁궐지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쌍북리유적의 경우 이대현 부여군의회 부의장, 임병고 백제사적연구회장 등 지역 인사들이 적극 나서 발굴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풍수적 시각에서 볼 때 성왕은 처음부터 초승달형 궁궐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궁궐지 경주 월성이 초승달 지형에 위치한 것처럼 새로 출범하는 남부여국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보름달은 장차 저물어 가는 일만 남았지만 초승달은 앞으로 커 나가는 기운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초승달형 지형에서 가장 핵심적인 터 기운은 부여여고 주변에 집중돼 있다. 백제 궁궐 기운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꿈꾸는 백마강에서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인공 연못인 궁남지. 현재 연못은 196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부여군 제공
부소산 앞쪽의 사비성이 화려한 백제를 상징한다면 백마강이 흐르는 부소산 뒤쪽, 즉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는 곳은 슬픈 백제를 대변하는 곳이다. 1940년대 가수 남인수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친 ‘꿈꾸는 백마강’은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삼천궁녀와 고란사의 사무치는 종소리를 애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노래는 사실 백제의 역사를 왜곡시킨 것이다. 정찬국 부여문화원장은 “낙화암은 나당연합군에 쫓긴 백제 왕족과 궁인들이 잡혀서 치욕을 당하느니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장소였다”며 “사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삼천궁녀는 의자왕을 폄훼하는 과장된 표현”이라고 말했다.

망국의 군주 의자왕은 승자에 의해 방탕과 무능한 지도자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의자왕은 ‘해동증자’로 불릴 정도로 효와 예를 갖춘 인물이었고, 중국 사서에는 지혜로운 군주로 묘사됐다. 휘하 장수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의자왕은 백마강 나루터에서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배를 타고 당나라로 끌려갔다.

부소산 기슭 백마강변의 구드래 나루터. 백마강은 서해바다까지 이어지는 사비백제의 주요 물길 교통로다.
의자왕은 백마강의 구드래나루 혹은 왕포리 포구에서 금강을 따라 내려간 뒤 군산포를 거쳐 서해로 나가는 물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길은 일본(왜) 및 중국의 사신들이나 머나먼 이국 상인들이 즐겨 찾던 교통로이기도 하다. 바로 사비백제의 ‘백가제해(百家濟海·100가가 바다를 건너오다)’의 길인 것이다.

부여군은 구드래 나루터에서 황포돛배를 띄워 백마강 뱃길 관광 상품을 만들어 놓았다. 백마강의 물길이 백제의 슬픈 역사가 아니라 동북아 해상강국의 주 무대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다. 겨울 매서운 추위로 강이 얼어붙어 황포돛배를 타보지 못한 것이 사비백제 여행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글·사진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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