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화수분 아니지만…” 홍남기 뒤끝 남긴채 ‘손실보상’ 항복

김광현 기자

입력 2021-01-22 14:32:00 수정 2021-01-22 15:5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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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온 추미애 법무장관(오른쪽)이 회의실로 입장하고 있다. 앞은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 두번째)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동아일보 DB.

# 역시나 ‘항복 선언’한 기획재정부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경제자문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영업 손실 보상대책과 관련해 “손실 보상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상세히 검토해 국회 논의 과정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은 “정세균 총리가 지시한 대로 국회에서 논의할 준비를 우리가 충실히 해야 한다”며 “저희가 반대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례를 1차로 조사한 내용을 소개한 것인데 그렇게 (반대하는 것으로) 비쳤다”고 해명했다.


정 총리는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정부의 방역 기준을 따르느라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분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제는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때”라고 다시 한번 못 박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영업자 영업제한 손실보상 제도화에 대해 “혹여나 입법적 제도화와 관련해 재정당국으로서 어려움이 있는 부분, 한계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알려드리고 조율하는 노력을 최대한 경주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정 총리의 주문에 따르겠다는 의사표시다.

홍 부총리는 “다만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 상황, 재원 여건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책변수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여당, 총리 등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직접적인 저항도 반대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이라며 그래도 미약하나마 저항한 흔적을 남겨놓는 홍남기식 특유의 처신 및 어법이다.

#정 총리의 내용 없는 분노
정 총리는 손실보상에 대한 법제화에 대해 곤란하다고 비쳐진 기재부 차관의 발언에 대해 격노했다. “대한민국이 기재부의 나라냐” “개혁저항 세력, 반대세력”이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정 총리의 발언은 기재부 차관의 발언 가운데 어디가 잘못 됐는 지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특히 “대한민국이 기재부의 나라냐?”는 표현은 정치인들이 전문성 갖춘 직업 공무원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 지를 내비친 대목이다. 마치 ‘영혼 없는 공무원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라는 말이 생략돼 있는 느낌마저 준다.

정치인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비슷한 발언이 최근 있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재형 감사원장이 탈(脫) 원전 정책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감사에 착수한 데 대해 “소중하고 신성한 권한을 부여받은 자가 그 권한을 권력으로 휘두른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했더니 주인 행세를 한다”고 했다.

감사원은 행정기관과 공무원 등의 업무처리가 적정한지를 살피는 지 검사 감독해서 국민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살피는 기관이다. 마찬가지로 기재부는 어느 정권이냐에 상관없이 나라 곳간 관리를 잘 해 국민이 낸 세금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살피는 기관이다.

#할 일 하고 욕먹은 기재부
자영업자에 대한 손실방식이 법제화를 통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인지, 앞에서 집행한 나라들은 어떻게 하는 지를 조사하는 것은 기재부가 당연히 해야 할 임무이고 오히려 이를 게을리 하면 직무유기감이다.

기재부가 앞서 살펴본 나라는 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들과 미국 일본 등이다. 김용범 차관의 설명대로 법제화를 통해 지원한 나라는 없었다. 그래도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 규모와 속도가 한국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일본은 도쿄 등 수도권 일대에 이달 8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코로나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휴업보상금으로 하루 6만 엔(약 6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4월 긴급사태 선언 때의 4만 엔(약 40만 원)을 6만 엔으로 올렸다. 이번 긴급사태 예정 기간은 한 달이므로 영업일수를 따져 최대 180만 엔(약 1800만 원)까지 지급한다. 휴업이라고 해도 종일 휴업도 아니고 오후 8시 이후의 휴업이다. 독일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12월 16일부터 부분 봉쇄에 들어가면서 아예 영업을 하지 못하거나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떨어진 업체에 대해 전년도 같은 기간 매출액의 75%까지 보상하는 조치를 취했다”(동아일보 1월 14일자 송평인칼럼 ‘분노하라! 자영업자들이여’)

정 총리의 질책이나 의원들의 발의안을 봐도 자영업자의 지원에 대한 취지만 장황할 뿐이지 이를 법으로 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홍남기 부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제도화 방법은 무엇인지, 외국의 벤치마킹할 입법사례는 있는지,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하면 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소요 재원은 어느 정도 되고 감당 가능한지 등을 짚어보는 것은 재정당국으로서 의당 해야 할 소명”이라고 한 것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 발언이다. 하지만 부총리의 ‘다만’이라는 넋두리 독백 이상의 실질적 의미는 없어 보인다.

#손실보상 법제화가 최선일까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고 인정하는 전문가, 일선 공무원들도 반드시 별도의 법을 만들어 지원해야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있다.

4차까지 진행된 긴급재난지원금 역시 기존의 법 조항에 근거해 여야와 정부가 합의해 규모를 정하고 비교적 신속하게 집행됐다.

오히려 별도 법으로 규정해놓으면 지원대상 선정, 피해 규모 산정, 집행 절차 등이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 태풍 등 주로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를 구제해주는 재난안전법의 경우 예컨대 태풍이 모두 지나간 뒤, 엄격한 손해사정을 통해 피해자 피해규모를 정해 지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위법이 되기 때문에 일선 공무원들로서는 절차를 따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신속하고 유연하게 집행하려면 오히려 정부와 여야가 논의해 추경을 통해 집행하는 것이 나은 방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법제화할 경우 정치인들이 ‘이런 지원 법을 내가 혹은 우리가 만들었다’는 생색내기 외에 어떤 실익이 있을까 다시 한번 냉정히 따져 봐야할 문제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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