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사소한 디테일’이란 없다”

손택균 기자

입력 2021-01-22 03:00 수정 2021-01-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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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앞건축사사무소의 ‘구름집’
강남 신사역 인근 주택가 건물… 평범한 외관속 세심함 숨어있어
빗물-가스배관 뒤로 감춰


상층부에 가족 삼대가 모여 생활하는 서울 강남구 ‘구름집’(위 사진)은 곳곳의 세심한 디테일을 튀지 않게 차분히 정돈한 건물이다. 류인근 김도란 요앞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아래 오른쪽 사진·왼쪽부터)은 옥상 계단부를 비롯한 각 요소의 색상 선택에도 공을 들였다. ⓒ요앞건축사사무소·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건축상을 많이 받고 TV에 자주 출연하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살면 행복하고 편안할까. 꼭 그렇진 않다. 유명인이 디자인했다는데 웃풍과 누수가 심각한 집, 의외로 적잖다. 김도란 류인근 요앞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은 ‘확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부분에 들인 정성이 사용자의 삶에 이로움을 보탠다’고 믿는, 그래서인지 아직은 많이 유명해지기 전인 건축가들이다.

“문손잡이 모양을 어떻게 할지, 잠금장치는 어떤 방식으로 어느 위치에 설치할지, 보일러 연통과 빗물 배관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깔끔하고 효율적일지, 그런 자잘한 디테일을 매번 오래 붙들고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이따금 ‘건축가는 주변 공간의 흐름을 폭넓게 해석해야 하는데 건물 안쪽의 국소적인 작업에 너무 치중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해요.”(김)

건축가는 과연 꼭 그래야 할까. 건축교양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도시의 시공을 관통하는 땅의 맥락’ 같은 건 사실 복닥복닥한 일상과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날마다 손으로 잡아 돌리고 미는 문손잡이 모양이 이상하거나 열쇠구멍 위치가 어색하면 생활이 확실히 불편해진다. 연통 설비가 꼼꼼히 마무리되지 않은 건물은 입주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소한 요소들이 건축 담론의 장에서 하찮게 치부될 까닭이 없는 것. 요앞의 건축가들이 지난해 서울 서초구 신사역 인근 주택가 골목 모퉁이에 완공한 다세대주택 ‘구름집’은 그런 문제의식을 견지한 디테일을 품은 건물이다.

외관엔 특출한 구석이 없다. 이웃 건물의 채광을 위해 사선으로 깎은 상층부 등 익숙한 형태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40대인 건축주는 4, 5층에 모친과 누이들, 아내와 자녀가 함께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고 1∼3층에 임대공간을 두길 원했다. 10분 정도 뜯어보고 나니 ‘굳이 이런 부분에까지 품을 들였네’ 싶은 요소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대체로 전면부에 덩그러니 드러나는 빗물 배관과 가스관들을 뒤편 골목 쪽 외벽으로 모아 건물의 얼굴을 말끔하게 정돈했다. 아치 모양으로 둥글리고 안쪽을 따뜻한 핑크색으로 칠해 포인트를 둔 연통창을 보니 ‘그냥 다른 건물 다 하는 것처럼 무난하게 작업하기 원하는 시공업체를 설득하느라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든다. 슬래브와의 연결부를 아치형으로 둥글린 주차장 기둥은 사용자를 은근히 편안하게 만들어줄 디테일이다.

“디자인이라는 게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그냥 둬도 무방하겠지만 조금만 번거롭게 수고하면 편리함과 시각적 만족감을 확실히 더할 수 있는 것. 그런 선택을 건축가가 했는지 안 했는지 건축주는 모르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업이라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류)

이들은 최근 경기 평택시 개발지에도 4층 높이 임대주택을 설계했다. 주변 건물이 없는 텅 빈 땅에서 ‘도시 맥락을 살핀 건축적 장소성’이란 말은 공허했다. 요앞의 건축가들은 그곳에서도 작은 디테일을 차곡차곡 쌓아 이었다. “어디 두어도 온전해 보이는, 홀로 넉넉히 완결된 공간”을 만들고 싶으므로.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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