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로켓배송, 제2의 ‘타다’ 되나

김광현 기자

입력 2021-01-20 14:54:00 수정 2021-01-20 17:21:2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동아일보DB
해가 뜨기도 전인 캄캄한 새벽에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배송 트럭들이 아파트 동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전날 저녁에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주문하고 결제까지 마친 신선한 식재료들이 문 앞에 딱 도착해 있다. 추운데 일어나 동네 슈퍼까지 걸어 나가 두부 콩나물을 사오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진지 오래다. 특히 장볼 시간이 많지 않은 맞벌이 부부에게는 더 없이 고마운 서비스다. 4차 산업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서비스가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다.

반면 모든 산업의 발전이 그렇듯 이커머스의 발전도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측면도 있다. 전통 유통산업의 위기다. 동네 구멍가게, 전통시장에 가야할 이유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전통시장, 동네슈퍼가 자체 경쟁력을 갖출 수 없으니 찾을 곳은 정치적 해결 밖에 없다. 확실한 방안은 배송 트럭들의 운행시간이나 품목에 대해 법적으로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여기에 표가 아쉬운 지역구 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이 나서고 있다.
○줄줄이 쏟아지는 유통규제
더불어민주당의 신영대 의원을 포함한 몇 명의 의원들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을 발의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현재는 대형 마트만 주 2회(일요일) 휴무해야하고 전통시장 인근 출점을 제한하고 있다. 개정안들은 한결같이 이 조항을 강화하는 내용들이다.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스타필드나 롯데몰 같은 복합쇼핑몰도 주 2회(일요일) 의무적으로 휴업하고, 백화점까지 포함시키자는 개정안도 있다.

동아일보DB
의원 개인들의 의견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힘을 싣고 있다. 이 대표는 작년 9월 서울 망원시장을 찾은 뒤 가진 상인간담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을 이번에 빨리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주된 것이 쇼핑몰에 대해 의무휴일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이지만 그것도 서둘러 처리를 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복합쇼핑몰 뿐만 아니다. 쿠팡 같은 E커머스 업계의 영업시간과 판매품목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자는 개정안도 검토되고 있다.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지만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법의 취지를 감안하면 전통시장 상인, 골목 가게 주인 등 지역 상인들의 견해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E커머스 업체의 대표적인 서비스인 새벽배송 로켓배송은 영업시간, 취급 품목의 제약을 받게된다. 새벽 시간 배송이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전통시장 경계로부터 최대 20㎞ 이내의 범위를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서울 강북 어느 곳에 전통시장이 하나 있다면 일산을 넘어 거의 DMZ 근처까지 더 이상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없도록 못 박겠다는 것이다. 황당하긴 하지만 이런 법안들도 180석의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이 밀어붙인다면 입법화되는 게 요즘 추세다.

○‘봉봉이아빠’의 호소
‘봉봉이아빠’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유통업체 근무자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유통법 개정안 재검토를 요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자신이 ‘당원’이라고 밝힌 그는 유통업 개정안 움직임의 불합리한 점을 4가지로 정리했다.

요약하면 첫째, 대형 유통업체 다니는 월급쟁이 직원도, 거기에 입점한 사람도 소시민이다. 대형유통 규제로 결국 다니는 직원들과 입점업체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대형유통의 고용창출효과와 비교해 전통시장은 지역민 고용효과가 있는지 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통시장은 현금영수증 누락 등으로 세수에도 크게 도움이 안 되지만, 대형마트와 직원, 입점업체는 거래액을 국세청에 매달 신고하고 있다. 어떤 것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겠는가.

셋째, 이커머스와 전통시장은 기본적으로 고객층이 다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커머스 고객들이 불편한 전통시장을 찾을 거라고 보는가. 이커머스 규제를 통해서 전통시장이 활력을 찾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미래산업인 이커머스 산업 규제는 시대퇴행적이다.

넷째, 전통시장을 살리시려면 전통시장이 가지고 있는 불편함과 상인들이 고객의 니즈를 찾을 수 있게 지원을 해야지, 그들 표심을 위해서 산업 전반을 규제하는 것은 대한민국 유통경제를 망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정부 여당은 ‘상생’ 명분을 내세우며 힘으로 밀어 부칠 것이 아니라 법 개정안 처리 이전에 이 4가지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할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국민의힘 서울시장 출마자) 반대 의견, 당론은 미지수
동아일보DB
나경원 전 의원은 복합쇼핑몰 영업제한, 배송서비스 규제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정부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복합쇼핑몰 입주 점포들은 주말에 평일 대비 두 배 가까이 높은 매출을 올리는데 월 2회나 주말에 문을 강제로 닫아버리면 사실상 이분들의 소득을 깎아버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형 복합쇼핑몰은 백화점과 달리 대기업 제품보다 중소기업 제품이 많다. 대표적인 복합쇼핑몰인 스타필드와 롯데몰에선 입점 업체의 60% 이상이 중소기업 브랜드다. 주말 영업이 제한되면 이들 역시 매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한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이 또 다른 소상공인을 잡아먹는 셈이다.

나 전 의원은 “점포 영업이 어려워지면 누구부터 일자리를 잃나. 바로 거기서 일하는 청년 종업원들이다. 새벽배송·로켓배송이 끊기면 또 어떻게 되겠나. 배달노동자의 일감이 끊긴다. 온라인 판매로 그나마 코로나19 위기를 버티는 업체들은 판로가 막힌다. 그러면 그 관련 업체들도 도미노 타격”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국민의힘 당론이 아니라 나 전 의원 개인의 견해다. 막상 법안이 발의되면 여야를 막론하고 전통시장을,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명분에 맞서 막연한 소비자들의 표를 기대하며 정면에서 반대할 수 있는 지역구 의원이 몇이나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말없는 다수 대변할 소비자 단체는 ‘꿀 먹은 벙어리’
복합쇼핑몰, 로켓배송, 새벽배송 규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소비자들이다. 불편하지만 생계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 결사적으로 반대하지 않을 뿐이다.

‘우버’는 물론이고 ‘타다’ 서비스의 좌절 과정과 흡사하다. 공유차량 서비스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면 많은 밤길 택시 잡기 어려운 승객들을 포함해 수많은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겠지만 택시기사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들이다. 이들은 광화문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에 나섰고 서고 여러 명의 기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 여당이 나서 ‘타다’를 전면 금지시켰다. 택기기사들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의견 수렴과정에서 타다 서비스의 이해관계자 중 한 축인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도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흩어져 있는 소비자들을 대변해야할 단체로 자청한 기관들이 이른바 소비자단체들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는 한국YWCA연합회, 한국부인회, 소비자시민모임, 대한소비자연맹, 대한부인회 등 11개 단체가 가입돼 있다. 이들 단체 가운데 누구 하나 이렇게 소비자들의 이익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미래산업과도 직접적으로 연계된 사안에 대해서는 이들 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흔한 성명서조차 하나 내지 않고 있다.

로켓배송, 새벽배송, 쇼핑몰 휴일개점 규제는 말없는 대다수 소비자의 침묵 또는 방관, 관여도가 높은 이해관계자의 높은 목소리, 표와 이미지를 계산하는 국회의원이 어우러져 결국 무산된 ‘타다’ 서비스 시즌2가 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