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 악도 스승이다… 갈등 없애려면 바다 같은 대긍정 가져야”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1-18 03:00 수정 2021-01-1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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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종교인 인터뷰]〈3〉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
질병과 정치 연결짓지 말고 솔직히 잘잘못 얘기하고 이해 구해
지도자들이 희망의 메시지 전해야… 편가르기에 나선 원로들 힘 없어
열린 눈-큰 안목-소통이 필요


4일 부산 금정구 안국선원의 작은 길에 있는 수불 스님. “출가 이후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인 수행에는 도움이 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게 스님의 말이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4일 부산 금정구 안국선원에서 만난 수불 스님(68)은 “통상 동안거(冬安居)에는 서울과 부산의 선원을 합해 2000여 명이 함께 수행했는데, 지금 서울은 폐쇄돼 있고 부산은 20명 이내 참석만 가능해 낯선 풍경”이라며 “출가 이후 처음으로 시간이 많아 개인 수행에는 도움이 되는데 다른 이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1989년 안국선원을 설립한 수불 스님은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 보급에 힘쓰며 도심 포교의 새로운 모범을 세웠다.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을 비롯해 불교신문사 사장, 부산 범어사 주지 등을 지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덕담을 들려 달라.

“인류는 수많은 전쟁과 자연재해, 질병을 경험했지만 극복하면서 살아남았다. 그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는 극복의 유전인자가 새겨져 있다. 이런 힘든 일과 시간도 지나가는 것 아니겠나. 이 어려움을 우리가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삼기 위해 지혜의 눈을 떠야 한다. 미래 인류사회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찾는 게 이 시대, 우리의 책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우울증과 무기력함,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준 국민들도 사태의 장기화로 지칠 수밖에 없다. 종교를 포함한 정신분야 리더와 국가 지도자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질병과 정치를 연결짓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 솔직담백하게 잘잘못을 얘기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시대의 영성(靈性)과 수행법은 무엇인가.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갈등의 소리에 경계(境界)가 흔들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


―수행 경험이 부족한 분들이 많은데….


“신도 분들 중 어려운 상황에 더 열심히 수행하고 이웃과 나누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자신 주변의 좁은 범위가 아니라 공동체, 사회, 국가 단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이 어려운 분들은 ‘담담히 자기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자신의 한 생각을 돌이켜 중심을 잡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마음이 급해지면 잡히지 않고 우울감과 분노가 자신을 삼켜버린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나.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고 있지만 기후, 환경, 생태 차원에서 문제점이 많았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정치, 경제에 목을 매는 삶을 살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내면화돼 있었다. 우리가 주인이면서 그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

―사회 통합을 위한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국가와 사회 지도층, 원로와 종교계 리더들이 마음을 크게 열어야 한다. 왜 편협한 사회로 치닫고 있나. 정치 경제 종교 사상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큰 모토가 있어야 하는데 각자 자기 생각대로만 가자고 한다. 이런 갈등의 봉합은 물밑에 있다 수면으로 오르면 다시 변질된 모습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최근 시국과 관련한 성명을 보면 원로 그룹마저 나뉘어 있다.

“좌우라는 이념적 구분보다는 더 큰 안목,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존경 받는 원로가 있긴 할 터인데 그분들은 큰 문제에 나서야 한다. 원로라는 그룹이 정치권의 편 가르기에 들어가니까 힘이 없다. 열린 눈, 큰 안목, 소통의 소리가 필요하다. 국민을 어루만지는 원로들이 많아야 중심이 잡힌 사회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나 성철 스님(1912∼1993) 같은 원로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원로는 작은 일에 반응하지 않고 말이 무거워야 한다. 원로들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가르침을 주고 힘들어도 고언(苦言)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직한 분이 있다는 의지가 생긴다.”

―성철 스님은 어떤가.

“그분은 기본적으로 세상과 가까이 하지 않는 수행자의 삶을 지켰다. 세상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과 함께한 분이기도 했다. 세상을 걱정했기 때문에 법문을 멈추지 않았고, 정신적 공부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목소리에 울림이 컸다.”

―우리 사회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이쪽저쪽의 가운데가 아닌 진리에 입각한 중도(中道)의 눈이다. 중도는 보편적, 상식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지혜로운 눈이다. 그런데 세상을 보면 그런 눈을 지닌 분은 나서지 않고, 그렇지 않은 분들만 나서고 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달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상대방을 긍정하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선(善)뿐 아니라 악(惡)도 스승이라고 했는데, 이런 자세를 가져야 갈등을 없앨 수 있다. 바다 같은 대(大)긍정의 세계다. 바다는 온갖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 아닌가. 리더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한 덩어리로 안고 나아가야 한다. 내 편은 받아들이고 네 편은 내치는 것은 큰 후유증으로 반복될 뿐이다.”

―마음에 새길 경구를 들려주면….

“인간은 본래청정(本來淸淨)하다. 청정은 물들지 않는 것인데, 물드는 건 아무리 깨끗해도 청정이 아니다. 알아야 수행할 수 있다. 원인을 갖추지 못한 채 결과만 바랄 수는 없다. 짧은 삶을 살다 가도 생명은 소중하니 귀하게 살아가야 한다. 모두 진리에 눈을 뜨기를 바란다.”

●수불 스님은
△1953년 경남 통영 출생
△1975년 범어사 지명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9년∼안국선원 개원, (재)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 이사장 겸 선원장
△2010∼2012년 불교신문사 사장
△2011∼2017년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
△2012∼2016년 조계종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 회장
△2015년∼BBS부산불교방송 사장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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