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건혁 기자

입력 2021-01-06 03:00:00 수정 2021-01-06 04: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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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새해특집
[코로나 사피엔스]
<2> 뉴노멀 자리잡는 재택근무




“과거 일했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해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5∼10년 내 전 직원의 절반이 원격근무를 하게 될 것이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을 활용한 ‘가상근무’도 가능하다.”(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익숙하던 ‘9 to 6’(9시 출근 6시 퇴근)의 공식은 깨졌다. 자택은 새로운 ‘집무실(집+사무실)’로 바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이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오던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진행되면서 직장인들은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한 과제를 안게 됐다.

○ 성큼 다가온 ‘일의 미래’…‘뉴노멀’ 된 원격근무

대기업 신규 사업 태스크포스(TF) 소속 김모 과장은 재택근무를 하며 해외 사업계획서 초안을 작성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업 프로그램 팀스에 올렸다. 그러자 TF 책임자인 임원이 직접 파일을 열고 문건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김 과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팀장을 거쳐 임원에게 보고됐는데, 재택근무를 계기로 모두가 협업 프로그램 이용에 익숙해지면서 의사 결정이 빨라졌다”고 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의 확산은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각종 협업용 프로그램은 물론 화상회의,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도입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이모 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작업한 내용은 노트북이 아니라 사내망에 저장된다. 어디서든, 누구의 노트북으로든 업무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했다.

앞으로도 온라인근무가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9월 내놓은 ‘매출 100대 기업 재택근무 현황 조사’에서 답변 기업의 53.2%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종식되더라도 재택근무가 줄지 않고 오히려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IT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가 해외 출장이나 오프라인 미팅 없이도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라는 90억 달러(약 9조7200억 원)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키는 걸 보고 놀랐다”며 “관성적으로 해오던 대면 활동이 신기술을 활용하면 비대면으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 혼자 일하는 ‘랜선사원’…업무성과 어필해야

홀로 근무하는 ‘랜선사원’이 늘어나는 등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직장인의 덕목도 바뀌고 있다. ‘성실함’ ‘분위기 메이커’ ‘적극성’ 등은 이제 인정받기 어렵다. 따로 떨어져 근무하다보니 업무 분장이 명확해지고 철저하게 가시적 성과로만 평가받게 됐다. 야근하며 상사의 눈도장을 찍는 것만으론 부족한 상황이 된 것이다. 김나이 직장인 커리어 컨설턴트는 “디지털화 등 변화에 맞춰 성과를 내고 필요한 인재라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직장인들은 회사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블라인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64%가 ‘재택근무 시 회사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업무 조율이나 인력 관리가 주 업무였던 중간관리자나 인사, 총무 등 실적이 드러나지 않는 분야의 종사자들은 불안감이 크다. 대기업에 다니는 임모 차장은 “상사나 임원에게 상시 대면 보고라도 해야 일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아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회사로 꼬박꼬박 출근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랜선사원’일수록 자신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현정 숭실대 혁신코칭컨설팅센터 교수는 “상사나 동료에게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결과는 무엇인지 문서나 메신저 등으로 정기적으로 보고할 필요가 있다”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무기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N잡’ 도전하는 직장인들

일부 직장인은 재택근무로 늘어난 개인 시간을 활용해 ‘N잡(여러 직업)’ 찾기에 나서고 있다. 직장인 김새미(가명·33) 씨는 최근 회사가 6월까지 재택근무 방침을 정하고 사무실을 닫자 부업 찾기에 나섰다. 김 씨는 “출퇴근이나 화장에 쓰는 시간이 절약돼 하루에 3시간 넘게 여유가 생겼다”며 “그림에 자신이 있어 메신저에서 사용할 이모티콘을 팔아보려고 한다”고 했다. 김성남 인사조직 칼럼니스트는 “1인 창업, 유튜브 등의 등장으로 N잡이나 부캐(부캐릭터) 개발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본업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취업준비생들도 코로나19로 바뀐 ‘비대면’ 채용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역량검사, 화상면접 등은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는 올해는 물론 앞으로도 주요 채용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구직자들은 화상면접을 위한 스터디는 물론 면접 시 화질과 음량, 안정적인 접속환경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취업에 대비하고 있다.

국내 IT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화상면접은 화술과 얼굴 표정, 시선 처리가 중요하다. 평소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충분히 연습해둬야 실전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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