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담 박애병원 돕겠다” 부산-광주서도 의료진 달려와

이미지 기자 , 강동웅 기자

입력 2020-12-26 03:00 수정 2020-12-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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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전국서 지원… 24일부터 진료 시작

거점 전담병원 운영 첫날… 분주한 의료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24일부터 운영에 들어간 경기 평택시 박애병원 의료진이 이날 코로나19 확진자를 병원 안으로 옮기고 있다. 경기일보 제공
25일 오전 7시 경기 평택시 박애병원의 한 병동. 신경외과 전문의인 곽형준 씨(48)가 뜬눈으로 성탄절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날 오후 11시경부터 약 8시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진료했다. 광주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곽 씨는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파견의사를 모집한다는 대한의사협회(의협) 공고를 보고 곧바로 지원했다. 첫 번째 파견지가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 1호인 박애병원이다. 24일은 박애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가 시작된 날이다.

곽 씨는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코로나19 대응에 도움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의협 공고를 보고서 곧바로 지원했다. 첫날부터 밤을 새웠지만 오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근무 중인 병원에 한 달간 무급휴직을 내고 평택으로 왔다. 코로나19 환자를 살펴보면서 벌써부터 휴직기간 연장을 생각 중이다. 처음에는 한두 달 정도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내년 1, 2월에도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평택에 더 머물겠다는 것이다. 곽 씨는 “떠날 때 아내와 아이들은 말리지 않았는데 노모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며 “어머니께는 ‘이번에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집을 짓는 데 벽돌 한 장 보탠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왔다”고 했다.

의협이 18일부터 시작한 코로나19 환자 진료 파견의사 모집에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현재 1105명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 이 중 박애병원 5명을 포함해 모두 53명이 진료 현장에 배치됐다.

의료봉사상을 받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의협 공고를 보고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자원한 의사도 있다. 2001년부터 파키스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외과전문의 민형래 씨(54)는 지난달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수여한 아산상 의료봉사상 시상식 참석차 입국했다가 의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민 씨는 시상식 후 국내 한 의료기관에서 6주 일정의 연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기 위해 연수마저 중도에 포기했다. 민 씨는 부산의 자택을 떠나 28일부터 박애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할 예정이다. 그는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가서 돕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정말 많은 의료진이 고생하고 있는데 나도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1차 유행 때도 지원하고 싶었지만 당시엔 국내에 있지 않아 그러지를 못했다.

박애병원에 온 지원자 중에는 60대 ‘노(老)의사’도 있다. 충북 청주시의 한 병원에서 일하던 신경외과 전문의 정효숙 씨(66·여)는 24일부터 박애병원에서 중증의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정 씨는 말기암 환자 등 호스피스병원에서 돌봤던 임종 직전의 중환자들이 생각나 지원했다. 16년간 서울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했던 그는 지난해 울산의 한 호스피스병원으로 내려가 1년간 중환자들을 돌봤다. 그는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필요하다는 모집 공고를 보자 자신의 경험이 떠올랐다고 했다. 정 씨는 “많은 시민과 의료진이 그동안 잘 버텨왔는데 어떻게든 지금의 확진자 수를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작은 힘이지만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가족들도 나를 응원했다”고 말했다.

김병근 박애병원장은 파견의사들의 지원을 두고 ‘성탄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김 원장은 “아직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지만 의료진들의 지원 덕에 진짜 ‘성탄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의료진들과 함께 환자 진료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강동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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