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땐 우버기사, 퇴근할 땐 음식배달”…투잡 뛰는 ‘긱 워커’ 전성시대

뉴스1

입력 2020-12-24 10:03 수정 2020-12-24 10:0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 News1

# 수도권에서 코딩학원을 운영하는 윤희성씨(가명)는 올여름 프리랜서 플랫폼 ‘숨고’에 이력서를 등록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학원생 발길이 끊기자 생계를 위해 ‘부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효과는 의외로 쏠쏠했다. 윤씨의 온라인 코딩 수업이 수강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자 강의 요청이 빗발쳤다.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180도 뒤바꿔놨다. 직장인은 출근보다 재택근무가 익숙해졌고, 인터넷과 담을 쌓고 살던 어르신들도 스마트폰으로 척척 장을 보는 시대다.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19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Before Corona, After Disease)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글로벌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Airbnb)는 지난 10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2배로 뛰었고, 미국 음식 배달 앱 ‘도어대시’(Doordash)는 전날(9일) 상장하자마자 주가가 86% 폭등하는 대박을 쳤다. 미국 포브스는 에어비앤비의 시가총액을 두고 ‘미국 빅3 호텔 체인 매리엇·힐턴·하얏트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평가를 내놨다.

에어비앤비와 도어대시는 공통적으로 공유경제, 그중 ‘긱 이코노미’(gig economy·프리랜서 경제)라고 불리는 신개념 경제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회사다. 포스트코로나시대 새로운 시장 질서로 떠오르는 ‘긱 이코노미’를 들여다봤다.

◇배민커넥트 5만명 시대…GS25 ‘우친’은 45배 ‘껑충’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배민커넥트’는 12월 기준 누적 등록 인원 5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 1만명을 달성한 이후 1년 만에 5배 이상 급성장했다. 실제 배달업무를 수행하는 활성 커넥터(배달원)는 약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배민커넥트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해 일할 수 있는 배달 아르바이트 프로그램이다. 배달 경험이 없어도 도보, 자전거, 킥보드를 타고 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대표적인 부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가령 직장인이 배민커넥터로 등록해 뒀다가 퇴근 무렵 집 근처로 접수된 상품을 배달해 주고 귀가하는 식이다.

수입도 퍽 쏠쏠하다. 배민커넥터는 500m 기준 배달 1건당 3000원의 배달비를 받는다. 500m 이상 1.5㎞는 3500원을 받고, 1.5㎞부터는 500m마다 500원의 할증이 붙는다. 주문이 몰리는 점심·저녁에 반짝 일하면 금세 지갑이 두둑해진다.

배민커넥트는 ‘긱 이코노미’의 대표적인 사례다. 한 기업이나 집단 소속돼 전업을 하기보다, 자신의 전문성(자산)과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출퇴근 시간마다 ‘우버’(Uber) 기사로 활동하는 의사, 수업이 없는 날 음식배달을 하는 시간강사는 ‘긱 워커’(gig worker)다. 원하는 시간에만 배달을 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도록 한 ‘도어대시’, 집이 빌 때 공간을 대여하고 돈을 받는 ‘에어비앤비’도 긱 이코노미에 포함된다. 자유롭게 시간을 정해 택배를 배달하는 ‘쿠팡플렉서’도 일 평균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긱 이코노미는 한국에서도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 하반기 ‘도보 배달’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인 편의점 업계가 대표적이다. GS25는 지난 8월 업계 최초로 도보 배달 서비스 ‘우리동네 딜리버리’를 선보였고, CU도 10월 ‘근거리 도보 배달 서비스’ 시작했다.

‘우딜’은 오프라인 점포를 기반으로 하는 근거리 Q커머스(Quick commerce·즉시배달) 플랫폼이다. GS25, GS더프레시 등 오프라인 점포 상품을 반경 1.5㎞ 거리까지 도보로 배달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배달직원 ‘우친’(우리동네 딜리버리 친구)는 사전에 배달원 신청을 해두면 파트타임처럼 일할 수 있다. 고객이 요기요 애플리케이션으로 동네 GS편의점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주문 콜을 잡아 배달해주면 된다. 배달 1건당 2800원에서 최대 3200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8월 중순 1000명대였던 우친은 서비스 한 달여 만에 2만8000명으로 28배 급증하더니, 12월에는 4만5000명으로 불어났다. GS25가 내부 목표로 잡았던 1만명을 4.5배 웃도는 규모다. CU 근거리 도보배달 운영 점포도 서비스 론칭 두 달 만에 전국 1700여 점포로 급성장했다.

CU 관계자는 “현재 도보 배달 운영 점포의 전체 주문량 중 약 30%가 도보 배달 주문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내년에는 배달 주문 비중이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도 ‘긱 워커’가 대세…新패러다임인가, 거품인가

‘긱 이코노미’ 시장이 커지는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학계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실업률이 치솟았고, 동시에 언택트(비대면) 수요도 오르면서 최적의 시장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일거리가 급한 실업자와 휴직자가 북적이고, 배달 주문이 전례없이 늘면서 ‘공급’과 ‘수요’가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배민커넥터, 편의점 배달원으로 뛰는 ‘긱 워커’는 70~90%가 2040세대 청장년층이다. 배민커넥터 연령대별 비율은 Δ20대(47%) Δ30대(35%) Δ40대(14%)로 40대 이하 배달원이 무려 96%를 차지하고 있다. 우친의 40대 이하 비율도 Δ10대(2.8%) Δ20대(19.3%) Δ30대(36.2%) Δ40대(27.8%)로 86.1% 수준이다. CU 도보 배달을 수행하는 스타트업 ‘엠지플레잉’ 배달원도 20~40세대가 85.2%에 달한다.

이한상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일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면서 소득을 보충하려는 경제활동인구가 많아졌고, 시장에서는 대부분의 소비 활동을 비대면으로 해결하려는 수요가 높아졌다”며 “결과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증가했기 때문에 ‘긱 이코노미’ 시장이 급성장을 이룬 것”이라고 풀이했다.

긱 이코노미는 ‘전문가 시장’에서도 활발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프리랜서 플랫폼 ‘숨고’와 ‘크몽’이 대표적이다. ‘한국판 업워크’(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로 불리는 ‘숨고’는 올해 서비스 주문 건수가 전년 대비 188.98% 급증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 250개의 신규 서비스를 추가하며 ‘서비스 카테고리 1000개’를 돌파했다. 업력 4년을 통틀어 전체 서비스의 4분의1이 최근 6개월 사이에 생겨난 셈이다.

숨고는 레슨, 홈·리빙, 이벤트, 비즈니스, 디자인·개발, 건강·미용, 아르바이트, 기타 등 8가지 대분류 카테고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숨고에서 활동하는 고수(서비스 공급자)도 법률전문가, 회계사, IT개발자 등 전문직부터 방송인, 헬스트레이너, 가죽공예, 미용사, 통역사까지 다양하다. 숨고에 고수 등록을 해두면 서비스 요청이 올 때마다 프리랜서처럼 부업을 할 수 있다.

박태희 숨고 매니저는 “올해 3분기 기준 숨고에 등록한 전문가는 약 50만명, 전체 이용자는 370만명을 넘어셨다”며 “그중 투잡이나 부업이 아닌 ‘전업 긱 워커’로 활동하는 전문가는 1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긱 이코노미가 미래 경제를 좌우할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긱 이코노미가 ‘공유경제’의 한 축으로서 성장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반짝 흥행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공존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긱 이코노미의 근간에는 ‘온디맨드 경제’(On-Demand economy), 즉 소비자중심 경제 원리가 있다”며 “경제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공유’로 이동하는 흐름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시장”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인공지능(AI)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점점 도래할수록 ‘직장’과 ‘근로’의 개념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며 “주5일 근무제가 주3일 근무제로 바뀌고, ‘평생직장’이라는 관념이 사라진 시대에는 투잡, 스리잡을 당연하게 하는 ‘긱 이코노미’가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한상 교수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는 긱 이코노미 열풍이 다소 주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국내법상 ‘프리랜서 안전망’이 체계화하지 않은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봤다.

이 교수는 “긱 이코노미는 공유경제 범주 내에서도 ‘코로나19’의 덕을 크게 봤다”며 “사실상 코로나19에 견인된 시장이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긱 이코노미는 대부분 임시직으로 분류되는데, 아직 국내법에는 프리랜서를 위한 법적 안전망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긱 워커의 노동권 측면도 면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서울=뉴스1)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