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왕서개 이야기’ 나란히 작품상

김기윤 기자

입력 2020-12-24 03:00 수정 2020-12-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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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와 함께하는 제57회 동아연극상]
‘우리는…’ 연출-연기상 등 4관왕
“체계적 개발단계 거쳐 작품 탄생”
올해도 대상 없지만 화제작 속출


사회의 경계에 선 트랜스젠더의 삶과 분투를 그린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왼쪽 사진)와 국적과 이름을 바꾸고 살아가야 했던 ‘왕서개’의 여정을 통해 기억의 문제를 조명한 ‘왕서개 이야기’. 성북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제공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와 극단 ‘배다’의 ‘왕서개 이야기’가 제57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공동 수상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경미)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이 나오지 않은 대상을 제외한 작품상 등 9개 부문 수상작(자)을 결정했다. 올해 본심에는 심사위원 추천작 18편이 올랐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연출상(구자혜) 연기상(이리) 유인촌신인연기상(박수진)까지 거머쥐며 4관왕에 올랐다. ‘왕서개 이야기’도 희곡상(김도영) 연기상(전중용)을 받으며 3관왕을 차지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은 공연이 취소 또는 연기되면서도 연극의 본질을 묻는 화제작들을 적지 않게 배출했다는 평가다. 심사위원들은 이날 “‘연극은 계속돼야 한다’는 신념을 끝내 잃지 않은 한 해였다. 특히 올해 수상작들은 아이디어 탐색, 희곡 발굴 시스템, 낭독극 같은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개발 단계를 거치며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했다”고 총평했다. 그러면서 “공연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많은 연극인이 공연을 포기하거나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전환하는 등 차선책을 모색한 힘든 해였다”고 밝혔다.

사회 성(性)소수자인 트랜스젠더를 조명한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그 경계를 두드리는 이들의 삶과 분투를 그렸다. 심사위원들은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희곡을 완성형 공연으로 만들어낸, 공력이 빼어난 작품”이라며 “형식 측면에서도 수어통역사, 자막, 배우의 연기가 무대에서 유기적으로 만나 객석에 묘한 울림을 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벽을 없앤)’ 연극”이라고 평가했다.



함께 작품상을 받은 ‘왕서개 이야기’는 1930년대 만주에서 매사냥꾼으로 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 왕서개가 이후 일본에서 국적과 이름을 모두 바꾼 채 전범(戰犯) 가해자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비극적 가족사와 세계사적 아픔을 통해 역사 속 가해자와 피해자, 기억의 문제를 감각적으로 질문했다는 평을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극장 전체가 텅 빈 유골함을 여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연출, 무대, 빛, 음악이 어우러져 밀도감 있는 장소로 구현됐다. 높은 몰입감과 무게감으로 기억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연기상을 받은 이리 배우(‘우리는 농담이(아니)야’)는 “확고한 연기 철학과 실천력을 겸비했으며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을 가장 절실하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한다. 연출과 관객의 접점에 선 배우”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역시 연기상 수상자 전중용 배우(‘왕서개 이야기’)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면서 묵직하고 신뢰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극 중 인물들이 피해자이면서 또 다른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설명했다.

신인연출상은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의 김풍년 연출이 받았다. 김 연출은 무대에 펼쳐 놓은 놀이판의 다양한 사물과 움직임을 통해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가게 만드는 유희적 연출을 선보였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박수진(‘우리는 농담이(아니)야’)과 권정훈(‘팜 Farm’)이 각각 수상했다.

희곡상을 받은 김도영 작가(‘왕서개 이야기’)는 역사와 기억의 문제에 천착하며 성찰적으로 접근해 뛰어난 작품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대예술상은 ‘무릎을 긁었는데 겨드랑이가 따끔하여’의 움직임과 안무를 맡은 금배섭 안무가에게 돌아갔다. 배우의 연기를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구현해 냈다는 심사평이었다.

지난해 수상자를 내지 못한 새개념연극상은 전통적 의미의 극장에 서지 못한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연극의 실천적 담론을 제시한 신재 연출가에게 돌아갔다. 이 상은 기존 연극 개념을 탈피한 형식과 감각의 연극을 추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특별상은 올해 임대차계약이 종료돼 문을 닫는 남산예술센터에 돌아갔다. 좋은 공연을 선보인 연극계의 상징적 공간이자 ‘공공극장’이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상식은 코로나19 확산 상황 등을 고려해 내년 1월 중 열릴 예정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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