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대출로 버티다 폐업… 다음날 “대출금 모두 갚아라” 전화

특별취재팀

입력 2020-12-23 03:00 수정 2020-12-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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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혹한’ 자영업의 눈물]
자영업자들이 말하는 문제점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청년 구직자나 은퇴자들이 자영업자로 내몰리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서울 마포구 홍대골목의 한 점포에 ‘임대 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현서 씨(43·여)는 8월 코로나19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경기 성남시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접었다. 두 달여간 가게 정리를 끝낸 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하는 ‘희망 리턴 패키지’ 재기교육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취업 교육을 해주고 일자리 찾기를 도와준다는 말에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교육이 끝나고 한 달 반이 지난 지금까지 공단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이 씨는 “희망 리턴이라더니 절망만 남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50여 명의 자영업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책’, 근시안적 행정에서 벗어난 ‘장기적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이 씨가 받은 교육은 내용 또한 ‘수준 이하’였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직업 찾기’ 강의는 포털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보안 전문가, 인공지능 전문가를 소개하는 선에 그쳤다. 그는 “일대일 컨설팅도 ‘전직(前職)을 살리면 자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뻔한 조언이 전부였다”며 “세금 들여 이런 프로그램은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가 늘어난 만큼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두 가게를 하는 이모 씨(64)는 “코로나19로 가게를 폐업하고도 폐업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이미 다른 가게를 차리고 나서 신청했다는 이유였다”라고 했다.

코로나19 긴급대출을 비롯해 자영업자 대출 전반에 대한 추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최모 씨(46)는 5월 소상공인 긴급대출 2000만 원을 받은 뒤 넉 달 만에 가게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폐업을 택했다. 하지만 폐업 바로 다음 날 대출금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은행의 독촉 전화를 받았다. 최 씨는 “폐업했는데 무슨 수로 갚느냐고 따졌지만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며 “정부가 돈 빌려주는 대책만 내놓지 말고 그 다음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홍익대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권모 씨(61)는 “개인 사정으로 아내가 개인회생 중이어서 긴급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없는 사람만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고 했다.

임금 근로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후 지원 대책을 강화해 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탁구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61)는 “당장 먹고사는 게 문제니 노후 대책은 포기한 상태다. 공무원들이 1년이라도 직접 장사를 해보면 우리 마음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주애진 구특교(이상 경제부) 조응형 김소영 박종민 김태언(이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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