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책 ‘땜질식 대출’ 편중… 급한 불 끄려다 빚만 쌓인다

특별취재팀

입력 2020-12-23 03:00 수정 2020-12-2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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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혹한' 자영업의 눈물]
<3·끝> 자영업자 되레 늘리는 정부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청년 구직자나 은퇴자들이 자영업자로 내몰리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서울 마포구 홍대골목의 한 점포에 ‘임대 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개업 첫날부터 2주간 영업금지→11월 중순부터 오후 9시 이후 영업금지→이달 8일부터 또 영업금지.’

9월 1일 서울에 스크린골프장을 차린 김모 씨(46)의 영업 일지다. 개업 이후 문을 연 날보다 닫은 날이 더 많다. 코로나19 여파로 운영하던 다른 사업을 정리하고 궁여지책으로 택한 길. 담보대출 6억 원에 남편 퇴직금까지 미리 당겨 받았다. 남편이 몇 년 후 퇴직하면 함께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며 노후를 보낼 계획이었다. “노후 자금을 몽땅 털어 시작한 건데 앞이 막막합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할까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층과 은퇴자 등이 생계형 자영업으로 몰리면서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과당 경쟁과 경기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어 왔다. 올해 코로나19는 기초체력이 약해진 자영업에 치명타를 날렸다. 정부는 20년 가까이 자영업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땜질 대책이 아닌 고용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당장은 좋은 ‘대출 지원’, 결국엔 빚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자가 급속도로 불어나자 정부는 실업 구제 차원에서 소상공인 대책을 내놨다. 2000년 소상공인 지원 근거법이 제정되고 창업자금 지원이 이뤄졌다. 이후 자영업 과잉을 해소하고 경쟁력을 높인다며 상권분석 정보시스템 구축, 창업 교육, 경영 컨설팅 등 단계별로 지원 시스템이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자영업 지원책을 나열하면 이렇게 많나 놀랄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자영업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실적 채우기 등 형식적으로 내놓은 정책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무인점포 전환 등을 지원하는 ‘스마트상점’ 사업은 10여 년 전부터 ‘디지털점포’라는 이름으로 추진돼 왔지만 실적이 지지부진하다. 매출 노출을 꺼리는 자영업자들의 상황을 반영 안 한 탓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가 각종 지원을 받으려면 관련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은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영업 지원책이 금융 지원에 쏠려 있어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상공인 예산(2조9282억 원) 중 약 77%가 대출 관련 예산이었다. 올해 코로나19 대응으로 늘어난 소상공인 예산(9조6697억 원)도 절반이 대출 지원이다. 정부가 경기가 나빠질 때마다 대출 지원을 늘리면서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자와 이들이 갚아야 할 빚만 늘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유동자금을 지원해 급한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년부터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는 등 후폭풍이 닥칠 수 있다”고 했다.

○ 자영업 달래려 손쉬운 규제 남발

악화된 자영업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각종 규제책을 쏟아내는 것도 문제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커지자 복합쇼핑몰 영업 규제, 영세 가맹점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방안을 내놨다.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카드 수수료는 관련법이 개정된 2012년 이후 수수료 원가를 산정하는 3년 주기로 인하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최근엔 배달 앱 수수료 부담이 논란이 되자 정부가 직접 소상공인 간편결제(제로페이) 도입에 나섰다. 정부가 손쉬운 규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부작용이 커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어려운 자영업자를 내버려둘 순 없으니 대형마트 주말 영업을 금지하고 상가임대차보호도 강화하자는 건데 기본적으로 자영업 과잉이 문제인 만큼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했다.

○ “자영업 진입 줄일 근본적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고용시장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책을 내놔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찍 직장에서 물러나 퇴직금으로 생계형 창업을 반복하는 상황이 문제”라며 “임금체계 개편, 커리어 관리 강화 등을 통해 사람들이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퇴자나 청년 구직자들이 무리해서 창업에 뛰어들지 않게 하려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아 새로운 직업군으로 옮겨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자영업의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자영업자들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협동조합 등을 통해 규모화를 이뤄야 한다”며 “상생 차원에서 자영업자가 대기업 인프라를 같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고 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주애진 구특교(이상 경제부) 조응형 김소영 박종민 김태언(이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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