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음료 스타트업의 반란… “내 브랜드로 IPO”

황태호 기자

입력 2020-12-22 03:00 수정 2020-1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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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 1위 업체 ‘제주맥주’, 11월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 청구
밀키트 생산 ‘테이스티나인’, 내년 목표로 주관사 선정 진행
대부분 中企가 OEM 방식 생산
식음료 업계에선 이례적 ‘사건’


식품, 음료 제조업계에서 자체 브랜드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스타트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수제맥주 1위 업체 ‘제주맥주’와 밀키트를 생산하는 ‘테이스티나인’ 등이 대표적이다. 식음료 업계에서 중소기업이 자체적인 브랜드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제품을 납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신생 기업의 사업 방식을 두고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제주맥주는 지난달 말 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여느 중소 주류 제조사는 작은 양조장으로 시작하지만 제주맥주는 처음부터 남달랐다. 미국 유명 수제맥주 제조회사인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공동 출자로 제주도에 500mL 기준 연간 600만 캔을 생산할 수 있는 300만 L 규모의 대규모 양조장을 건설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처음부터 수입맥주와 경쟁하는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빠른 대중화를 염두에 두고 설비 투자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캔맥주, 병맥주까지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는 설비도 사업 초기부터 갖춰 전국 편의점에 입점하는 데도 성공했다. 제주맥주는 생산설비를 지난해 1200만 L로 1차 증설한 데 이어, 내년 상반기(1∼6월) 추가 증설을 완료하면 약 2000만 L 규모로 커진다.

테이스티나인은 내년 IPO를 목표로 주관사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소량 직접 생산 후 OEM 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트렌드에 맞는 밀키트를 기획해 생산까지 소량으로 빠르게 진행한 뒤 성공 가능성이 보이면 OEM을 통해 대규모 생산에 나선다.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면서 수개월이 걸리는 대기업의 제품 개발과는 달리, 3∼5주 만에 기획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구조 덕분에 최신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찾는 TV 홈쇼핑, 대형마트 등 유통채널을 보다 쉽게 뚫었다.

제주맥주는 천편일률적인 국내 대기업 맥주 맛에 질린 소비자들이 수입맥주로 쏠리는 시장의 흐름을 포착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중화한 수제맥주’를 내놓았다. 테이스티나인은 브랜드 인지도가 중요한 보수적인 식품 시장에서 제품군별로 10여 개의 ‘스몰 브랜드’를 게릴라식으로 운영하는 독특한 전략을 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유행에 맞는 제품을 바로 내놓는다. 홍주열 테이스티나인 대표는 “단순히 맛있는 식품을 만들어 판다는 것에서 나아가 ‘식품업계의 SPA(패스트패션) 회사’를 처음부터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비롯한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것은 공통점이다. 제주맥주는 ‘연남동 팝업스토어’ ‘제주도 한 달 살기’ 등으로 소셜미디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테이스티나인은 최현석, 여경래 등 ‘스타 셰프’와 발 빠르게 협업을 추진했다.

두 회사의 창업자는 식음료 관련이 아닌 경제, 경영학을 전공했다.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이사는 뉴욕 포드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글로벌 위생관리 업체인 스위셔의 한국 사업을 진행한 이력이 있다. 홍 대표는 중앙대 경제학과, 성균관대 경영대학원(MBA)을 거친 삼일회계법인 컨설팅매니저 출신이다. 두 회사는 최근 투자 유치를 통해 각각 1000억 원(제주맥주), 700억 원(테이스티나인)의 가치로 평가받았다.

벤처투자사(VC) 관계자는 “이들 회사는 전통산업으로 분류되는 식음료 제조업도 비즈니스 방식에 따라 충분히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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