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빚에 잠못드는 불고깃집… “외환위기 실직때보다 더 힘들어”

특별취재팀

입력 2020-12-21 03:00 수정 2020-12-2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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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혹한’ 자영업의 눈물/‘황금 상권’ 홍대골목의 쇠락]가게 40곳 들여다보니








▼“알바 다 내보내 수술 다음날도 가게 지켜”▼


쇼핑몰 뛰어든 나홀로 옷가게 사장
모델-촬영-홈피관리 “매일 녹초”



“아빠 나잘깨 조심히 오새요 사랑해요.”

방문 옆 화이트보드에 삐뚤빼뚤 딸아이의 글이 적혀 있다. 매일 밤 자정이 지나서야 퇴근하는 아빠는 다섯 살짜리 딸과 이렇게나마 대화를 나눈다.

4년째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백승리 씨(37)는 올 들어 아르바이트생 3명을 모두 내보냈다. 일주일 내내 혼자 매장을 지킨다.

백 씨는 군대 제대 후 워킹홀리데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홍대 앞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손님이 넘쳐나던 홍대 골목은 도전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그 길로 취업을 하는 대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사장님이 된 지 10여 년. 백 씨는 요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 열두 번도 더 한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지만 골목엔 사람이 없다. 올해 최고 매출을 찍은 건 1월. 통상 재고를 털어내는 연초는 비수기이고, 연말이 최대 대목이지만 올해는 모든 게 거꾸로다. 손에 쥐는 돈은 포기한 지 오래다. 작년 3500만 원이던 월 매출은 1500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궁여지책으로 오픈한 온라인 쇼핑몰은 오히려 짐이 됐다. 혼자서 모델에, 촬영에, 홈페이지 관리까지 ‘스리잡’을 뛰어야 했다. 하루 네다섯 시간 자는 걸 빼면 일, 일, 일뿐이다. 최근 하반신 마취까지 필요한 큰 수술을 했지만 이튿날 아픈 몸을 이끌고 계산대 앞에 서야 했다.

대출 8000만 원. 지난해까지 빚 한 푼 없는 게 몇 안 되는 자랑이었던 백 씨에게 새로 생긴 걱정거리다. 코로나19 소상공인 긴급대출을 받고도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새로 만들었다.

장사를 그만두고 취직이라도 할까 싶지만 30대 후반 ‘초짜’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다. 오늘도 아빠를 기다리다 인사를 남기고 잠들었을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우리 딸을 생각해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자.”



▼‘왼쪽 마비’ 아내, 인건비 아끼려고 주방으로▼




주52시간-코로나에 회식 뚝
“매달 500만원 적자… 끝이 안보여”



지모 씨(62)가 자영업에 발을 디딘 건 정리해고 칼바람이 몰아치던 외환위기 때였다. 대기업 영업팀장이던 지 씨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자 퇴직금으로 노래방을 차렸다. 어머니에게서 빌린 노래방 권리금 1억 원을 1년 만에 다 갚을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노래방을 접고 호프집을 하다가 홍대 골목에 불고깃집을 연 건 4년 전 여름. 지 씨 부부에 두 딸, 둘째사위까지 팔을 걷어붙일 만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박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 7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자 회식을 하러 오던 직장인 손님들이 뚝 끊겼다. 월 3000만 원이던 매출은 순식간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붙들고 있던 희망은 올 들어 산산조각 났다. 간판에 써 붙인 ‘Bulgogi(불고기)’를 보고 찾아오던 외국인 손님들이 코로나19로 싹 사라졌다. 근처 점포들이 하나둘 폐업하면서 단골손님이던 옷가게 알바생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월 매출은 다시 3분의 1인 500만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임대료, 인건비 같은 고정비를 내고 나니 매달 500만 원씩 적자가 쌓였다. 이렇게 지 씨의 빚은 1억 원으로 불었다. 이 빚만 생각하면 부부는 밤잠을 설친다.

“바닥으로 떨어진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더라고요. 지하가 1층까지 있는 줄 알았는데 또 5층까지 추락하더라고….” 함께 일하던 큰딸에게도 그만 나오라고 어렵게 입을 뗐다. 딸한테 용돈처럼 주던 인건비 70만 원마저 아껴야 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에 접어들자 그나마 찾아오던 점심 손님은 3분의 1로 줄었다. 6년 전 쓰러져 왼쪽 신경이 마비된 아내는 저린 팔다리를 주무르며 그래도 주방에 들어선다. “외환위기로 직장에서 잘릴 때 숨이 막혔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더 힘듭니다. 살기 위해 여기서 버티는 것, 이게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파티 명소’ 소문난 루프톱, 1년만에 텅텅▼




파티플래너 창업자의 꿈 물거품
연말연시 대목 날아가 눈물



자동차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던 김모 씨(30)는 4년 전 사표를 던졌다. 아침마다 찡그린 얼굴로 출근하는 대신 신나는 ‘내 일’을 하고 싶었다. 좋은 날을 맞은 사람들에게 멋진 파티를 열어주는 게 오랜 꿈이었다.

전문대 파티플래너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2년 동안 테이블 세팅, 공간 연출, 술과 안주 만드는 법을 배웠다. 힘들게 취직한 회사까지 그만둔 마당에 성공한 파티플래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수백 잔의 칵테일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지난해 1월 김 씨는 홍대 앞에 펍을 열었다. 펍 위층엔 루프톱 라운지를 만들어 파티 장소로 빌려줬다. 분위기 좋은 파티 장소로 입소문 나면서 김 씨의 오랜 꿈은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30대 자영업자의 패기는 코로나19 기세에 꺾였다. 1년 전만 해도 주말마다 손님들로 꽉 찼던 루프톱은 올봄부터 텅 비었다. 지난해 겨울엔 크리스마스 파티와 송년회를 하려는 10팀이 루프톱을 빌렸지만 올해 12월 대관은 1건뿐.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뒤 대관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다. 오후 9시 이후로는 문을 열 수 없어 펍을 찾는 손님도 뚝 끊겼다.

성공한 창업가가 되겠다는 열정은 어느덧 사라지고 적게 벌더라도 월급쟁이로 버텼어야 했나 하는 자책에 사로잡혔다. 학교에서 배운 걸 활용해 새로운 파티 메뉴를 개발하고 인테리어도 바꾸고 싶었지만 섣불리 나섰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다. 김 씨는 자영업이 ‘양날의 검’이라 생각했다. 성공하면 엄청난 무기가 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도 찌를 수 있는….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그는 이 칼을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했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계속 버텨야 하나, 지금이라도 빨리 그만둬야 하나 고민입니다. 공부한 게 아까워서 일단 ‘존버(×나게 버티기)’ 하지만요.”



○ 특별취재팀

▽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조응형 김소영 박종민 김태언(이상 사회부) 주애진
구특교(이상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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