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네팔에”

영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12-17 03:00 수정 2020-12-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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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봉사… 원불교 모시은 교무
한글교실-의료지원-식수 개발…
“상황 어려운 현지 빨리 돌아가고파”


네팔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원불교 모시은 교무. 뒤편에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생가가 보인다. 영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히말라야 설산이 보이는 네팔의 포카라에 있다.

2004년부터 네팔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포교와 봉사활동을 벌여온 원불교 모시은 교무(52)의 심경이 그렇다. 최근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있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의 생가에서 그를 만났다. 모 교무가 태어나 지금도 거처하고 있는 집이 바로 그 옆에 있다.


―대종사 생가 옆에 집이 있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어릴 때는 들락거리며 놀던 곳이라 오히려 편안하다. 지난해 원형에 맞춰 복원했는데 멀리 네팔에 있을 때도 고향 하면 대종사 생가와 부모님이 있는 집이 함께 떠올랐다.”


―네팔의 코로나19 상황이 궁금하다.


“최근 확진자는 25만 명, 사망자는 1500명이 넘었다. 코로나19 초기에 인도 등 해외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이 귀국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한 달 전 내린 국가봉쇄령은 경제 문제 때문에 해제됐지만, 의료 시스템이 열악해 거의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현지와는 어떻게 연락하고 있나.

“현지 상주 직원과 계속 연락하고 있다. 교당과 구호단체인 ‘함께하는사람들’(이사장 김상수 박사)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학비도 지원하고 식료품도 전달해 왔는데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도 3월 귀국한 뒤 한국 체류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2000년 출가한 그는 2004년 카트만두에 부임해 원광사회교육센터를 통해 글쓰기와 태권도 교실 등을 운영했다. 2014년 포카라 교당으로 옮겨 명상과 한글 교실, 의료 지원, 나무 심기와 식수 개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원불교는 현재 해외 24개국에 68개의 교당과 36개의 기관을 두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귀국한 뒤 현지로 돌아가지 못하는 교역자들이 적지 않다.


―네팔과 어떤 인연이 있나.


“그냥 발령이 났다(웃음). 언어 문제만 빼면, 시내에 가려면 걸어서 가야 하고 사람들도 순박해 고향과 많이 닮은 곳이다.”


―네팔 포교 중 기억나는 일은….

“2018년 포카라의 너야버스티(네팔어로 새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뜻) 마을에서 지하수를 찾아 상수도를 연결했다. 히말라야 아랫동네인데도 식수 부족이 심각했다. 30분을 걸어 우물물을 길어오거나 고인 물을 쓰는데 건기에는 그것조차 말라 버린다. 상수도가 설치됐을 때 마을 전체가 축제 현장이었다. 지난해 작고한 백인정화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물이 생겼으니 채소와 나무도 심을 수 있어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대종사님의 가르침 중 무시선(無時禪)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 공부와 일의 시기가 따로 정해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오랜만에 부모님 곁에 있어 감사한 생각도 있지만 상황이 어려운 네팔 현지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

영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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