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박세리처럼… ‘스마일 퀸’이 쏘아올린 ‘코로나 희망가’

정윤철 기자

입력 2020-12-16 03:00 수정 2020-12-1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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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내내 마스크’ 눈길 끈 김아림
“힘든 시기 희망과 에너지 됐으면”
코로나로 예선 없어져 출전 기회
대회 처음 나서 챔프 ‘신데렐라’
외신 “마스크 쓰고 동화같은 우승”





1998년 7월. 박세리(43)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갔다. 햇볕에 까맣게 탄 다리와 대비되는 하얀 맨발은 그동안의 고된 훈련을 보여주는 듯했다.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정상에 선 그는 외환위기를 겪던 국민들에게 활력을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2020년 12월. 이번에는 이 대회에 처음 출전한 김아림(25)이 하얀 마스크와 함께 주목받으며 짜릿한 역전 우승의 낭보를 전했다. 그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내 플레이가 희망과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아림은 15일 미국 휴스턴의 챔피언스GC(파71)에서 끝난 대회 4라운드에서 최종 합계 3언더파 281타를 기록해 세계 1위 고진영과 에이미 올슨(미국)을 1타 차로 따돌렸다.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약 10억9300만 원).

‘박세리 대회’서 프로 첫승 김아림(왼쪽)이 2018년 KLPGA투어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승을 거둔 뒤 대회 호스트인 박세리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KLPGA 제공
활기찬 어퍼컷 세리머니와 발랄한 ‘배꼽 인사’로 유명한 ‘명랑 골퍼’ 김아림은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드라이버 비거리 1위에 오른 장타자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평균 255.8야드(4위)의 비거리와 정확한 아이언 샷(그린 적중률 69%·공동 5위)을 바탕으로 이 대회 첫 출전에 우승을 달성한 5번째 ‘신데렐라’가 됐다. 김아림의 아이언 계약사인 미즈노 관계자는 “출국 직전 김아림이 3개월 만에 클럽 점검을 받으러 왔는데 클럽 페이스가 굉장히 많이 닳아 있어 놀랐다. 연습량이 굉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는 이 대회에서만 10명의 선수가 11번 우승을 합작하는 강세를 유지했다. 박성현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승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골프 선수들은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김아림은 2018년 KLPGA투어 데뷔 3년 만에 첫 우승을 거뒀다. 당시 그 무대가 박세리가 주최한 박세리인비테이셔널. 이때 박세리에게 트로피를 받았다. 그랬던 김아림은 이날 우승 후 US여자오픈 트로피에 새겨진 박세리, 박인비(2회 우승) 등 역대 우승자 이름 옆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뒤 “영광스럽고 신기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TV 해설가로 대회를 중계한 박세리는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기뻐했다.

김아림이 1∼4라운드 내내 마스크를 쓰고 경기한 것도 화제가 됐다. LPGA투어에서 흔치 않은 모습에 해외 언론은 코로나19 사태가 빚은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했다. 영국 가디언은 “마스크를 쓴 김아림이 동화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김아림은 4명만이 언더파 스코어로 마치는 난관에도 코스 안팎에서 늘 마스크를 쓴 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6개월 연기된 이 대회 챔피언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고 보도했다. 김아림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했다”고 말했다.

올해 대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지역 예선이 열리지 않아 출전 자격이 세계 랭킹 50위에서 75위로 확대됐다. 김아림은 이 덕을 봤다. 기준일이었던 3월 16일 김아림의 랭킹은 70위였다. 개막 직전 94위였던 김아림은 역대 최저 랭킹 우승자가 되며 순위를 30위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국내 투어 우승이 없었지만 처음 열린 12월의 US여자오픈에서 화려한 피날레의 주인공이 된 김아림은 “최종일에는 무조건 핀을 보고 쏘자며 공격적 운영을 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미국에 동행해 딸이 좋아하는 한식을 매일 챙겨준 어머니 김호신 씨(53)의 역할도 컸다. 김아림은 “엄마표 뭇국과 잡채, 된장찌개가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경기 뒤 그는 한국에서 밤새 응원한 아버지 김종섭 씨(55)와 주최 측이 마련한 모니터를 통해 대화했다. “내가 짱이지? 날았어”라며 즐거워한 그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빠, 미안”이라며 도중에 자리를 떴다. 딸이 끝까지 듣지 못한 아버지 말은 이랬다. “박세리 프로처럼 힘든 시기에 힘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네가 그걸 해내 자랑스럽다.”

김아림이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세운 기록
―첫 출전에서 우승한 역대 다섯 번째 선수
―10번째 LPGA투어 비회원 메이저 챔피언
―대회 최종일 최다 타수(5타 차) 역전 타이
―최저 세계 랭킹(94위) 대회 우승자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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