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건희 회장이 수원에 잠든 까닭은[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안영배 논설위원

입력 2020-12-13 09:00 수정 2020-12-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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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진천, 사후용인 마다하고 수원에 장지 조성
풍수사상이 맺어준 수원과 삼성의 오랜 인연
삼성디지털시티 자리한 영통, ‘영(靈)’과 ‘통(通)’하는 명당


삼성디지털시티의 젖줄 역할을 하는 원천천. 안영배 논설위원.
경기 수원시와 삼성가의 인연은 뿌리가 깊다. 수원은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시작된 곳이자, 삼성가 선영들이 자리한 곳이다. 지난 10월 말 타계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도 수원 이목동에 장지를 마련하고 영면에 들었다.

애초 이 회장은 부모(이병철·박두을) 묘소가 있는 용인 에버랜드에 묻힐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풍수학계에서는 몇몇 지관들이 이건희 회장의 음택(陰宅·묘) 후보지를 고르기 위해 용인을 훑고 다녔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깨고 수원으로 장지가 정해졌다. 이 과정에 이 회장의 배우자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서는 진천 땅(生居鎭川), 죽어서는 용인 땅(死居龍仁)’이라는 속설까지 있는 용인 대신 수원을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 삼성 창업주 이병철, 풍수로 수원과 인연 맺다

삼성가가 수원을 중시하는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67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경남 의령에 있던 모친의 묘소를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위치한 산으로 옮겼다. 바로 직전 해인 1966년, 그는 큰 고초를 겪는다. 그가 경영하던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가 일본에서 사카린을 밀수입한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회사를 국가에 헌납한 일이다. 풍수에 관심이 많았던 이병철 회장은 당시 처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풍수가의 조언을 따라 묘를 이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풍수 고전인 ‘장서’에서는 이런 조치를 ‘탈신공 개천명(奪神功 改天命·신이 하는 일을 빼앗아 천명을 바꿈)’이라고 한다. 묘터와 집터 등을 옮겨 불운(不運)을 극복한다는 뜻인데, 적극적인 운명 개척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풍수를 매개로 한 삼성그룹과 수원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묘를 이장한 이듬해인 1968년, 조상이 지켜보는 수원에서 새로운 삼성을 준비했다. 수원 영통구 일대에 약 149만㎡(45만 평) 규모의 터를 확보한 것이다. 이후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을 창립했다. 1938년 대구에서 농수산물을 취급하던 삼성상회로 출발한 회사를 30년 만에 기술 집약 산업인 전자업체로 바꾸는 한국 기업사에 가장 혁신적인 프로젝트였다. 라디오와 TV생산 라인을 갖추고 불과 36명의 인력으로 시작한 삼성전자는 이후 고속 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났다.

현재 삼성전자가 위치한 곳은 총 면적 172만㎡(약 52만평) 규모의 ‘삼성디지털시티’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큼 크게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이후 반도체 생산라인을 경기 기흥, 화성, 평택 등으로 이전시켰다. 현재 삼성디지털시티에는 기술 혁신과 창조를 위한 정보통신연구소(R3)와 디지털연구소(R4), 모바일연구소(R5) 등 핵심 연구소들이 남아 있다.



● 좌청룡 삼성디지털시티, 우백호 삼성 선영

영통구의 신령스런 나무로 통하는 느티나무. 안영배 논설위원.
이달 초 삼성의 그림자가 짙게 밴 수원 일대를 찾았다. 경기 의왕시와 경계를 이루는 산자락에 위치한 이목동 선영에는 이건희 회장의 묘소를 기준으로 증조부모 묘와 조부모 묘가 상하로 가지런하게 조성돼 있었다. 이병철 회장이 SK 소유였던 땅을 매입해 모친 묘를 옮겨온 이후 삼성가는 1970년대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조상 묘들을 이곳으로 모신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아 묘역을 자세히 살펴볼 순 없지만 사신사(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아름다운 명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목동 선영은 수원 중심부인 팔달산 건너편에 위치한 삼성디지털시티와는 직선거리로 불과 10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그 배치가 묘하게 짝을 이룬다. 수원의 진산(鎭山)인 광교산을 기준으로 동쪽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자락 아래에 삼성디지털시티가 있고, 서쪽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자락에 삼성가 선영들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새의 양 날개 같은 모양새다.

● 영(靈)이 통(通)하는 터에 나타난 기적

삼성디지털시티 출입구. 안영배 논설위원.
삼성디지털시티는 선영 못잖게 양택(陽宅·사람이 거주하는 집 혹은 일터)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삼성디지털시티가 들어선 영통구 매탄동 일대는 과거 ‘산드래미’로 불렸던 곳이다. 지금은 그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자그마한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산둘레미→산드래미)이다. 북쪽으로 매봉 서쪽 자락의 원천호수(원천저수지)와 동쪽 자락의 신대호수(신대저수지)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원천천(遠川川)을 이뤄 삼성디지털시티를 감싸듯이 돌아나간다.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원천천은 삼성디지털시티에 끊임없이 좋은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한마디로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조화롭게 갖춰져 있는 길지다.

삼성디지털시티는 38층 규모의 오피스 타워를 중심으로 연구실, 사무실, 복지시설, 게스트하우스 등 130여 개 건물에서 50여 개 국적을 가진 3만5000명의 임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2018년 기준). ‘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임직원들을 위한 건강, 육아, 교육, 문화, 예술 관련 각종 시설물들이 갖춰져 있다. 일반인들이 이곳을 방문하려면 사전 예약과 승인을 거쳐야 한다.

삼성디지털시티에서 가장 핵심적인 혈처(穴處)는 공원인 센트럴파크(3만7699㎡)를 곁에 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삼성전자 본사다. 삼성전자는 서울 강남 서초동에 마천루 같은 사옥을 마련해 놓고서도 본사 주소를 한 번도 수원에서 옮기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위기 때마다 수원 본사에 모여 난국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스마트폰 사업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휴대전화 ‘애니콜 신화’에 젖어 있던 삼성은 미국 애플사가 출시한 스마트폰에 대비하지 못해 고전하다가 2010년부터 갤럭시S 시리즈를 선보이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삼성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는 기적을 이룬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 체제에서 삼성전자의 수원 본사가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흔히 반도체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폰은 글로벌 도술문명(道術文明)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에 비유된다. 스마트폰으로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 알 수 있고, 동영상과 통화 등을 통해 세계인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다. 즉 누구나 천리안(千里眼)을 가진 도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수원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통하게 해주는’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삼성디지털시티가 영통구(靈通區)에 자리 잡게 된 것을 범상치 않게 여긴다. 영통지역은 이름 그대로 ‘신령한 영(靈)이 통(通)하는’ 곳이다. 지명의 유래도 특이하다. 삼성디지털시티의 뒷배가 되는 청명산(191m) 봉우리의 우물 속에 영과 통하는 신비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거나, 신비스런 도인(혹은 산신)이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 보였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런 이유로 영통동 주민들은 매년 단오날이면 청명산 산신제와 신령스러운 느티나무(영통동 1047-3) 아래서 당산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풍수적으로 해석해도 청명산 아래 삼성디지털시티는 풍성한 재물을 뜻하는 토(土)의 기운과 영통, 교감, 창의 등을 뜻하는 화(火)의 기운이 적절히 배합된 터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혁신과 창조의 산실을 추구한다’는 삼성디지털시티의 목표와 어울린다. 삼성이 디자인 혁명을 강조하며 건립한 서울 우면동의 ‘서울R&D캠퍼스’도 수원으로 내려올 경우 더 빛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우면동 연구소는 터와 기운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주도했던 이건희 회장도 이런 이유로 수원을 지키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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