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원대 해외 빅딜도 오프라인 미팅 없이 온라인으로 성사

서동일 기자

입력 2020-12-12 03:00 수정 2020-12-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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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위드 코로나 워크’ 기업의 뉴노멀로


“올해 고위급 임원 간에는 단 한 차례의 해외 출장도, 오프라인 미팅도 없었다.”

10월 SK하이닉스가 미국 반도체 전통 강자인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 부문 인수를 발표한 직후 SK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어떻게 인수 금액만 90억 달러(약 10조2590억 원)에 이르는 ‘빅딜’을 성사시킬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최종 계약서 사인 전까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미국 현지 법인 관계자들조차 인텔 측과의 오프라인 미팅을 최소화했다. 그 대신 수백 차례의 쌍방향 온라인 화상회의 등을 통해 거래를 조율했다”며 “이번 계약은 여러 제약이 많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국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을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실제 SK하이닉스와 인텔은 최종 계약서도 해외 특급우편으로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쪽 기업이 최종 검토를 완료한 계약서에 먼저 사인해 우편으로 보내면 다른 한쪽이 사인을 추가하는 식이다. SK하이닉스 측은 2019년 초 인수 논의가 시작된 후 중국 다롄에 위치한 인텔 생산시설 등에 대한 실사 등을 활발히 진행하다가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자 이를 전면 ‘온라인화’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많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대형 M&A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여전히 출장은 어렵겠지만 각 기업마다 해외 법인 등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원격회의로 충분히 실사 및 계약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경영 변수 아닌 ‘상수’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은 올해, 국내 주요 기업은 대부분 전례 없는 ‘경영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전염 속도가 빠르고, 통제가 어려운 코로나19에 따른 크고 작은 피해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을 마련해 대응하기 급급했던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1년 가까이 1∼3차 확산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코로나19가 경영 계획 및 전략 수립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았다. 일상 업무뿐만 아니라 마케팅, 기업공개(IPO), M&A 및 투자까지 ‘위드 코로나 워크’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더 이상 ‘코로나19 때문에…’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시기가 됐다”며 “기업들 대부분이 신제품 공개 및 마케팅, 내부 행사의 온라인화 작업을 끝냈고 불안정한 해외 소비자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급망 체계를 다변화하는 등 코로나19로 변화된 경영 환경에 사실상 적응을 끝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주요 기업들은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 시대에 맞춰 재택근무, 원격회의 등은 물론이고 신제품 공개 행사, 내부 대형 행사의 온라인 전환을 사실상 마쳤다. 4대 그룹 중 한 곳의 최고경영진은 올해 중순 주요 임직원에게 “코로나19로 주요 행사 등을 연기하고, 내년으로 미루는 게 답이 아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당분간 지속될 것을 염두에 두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삼성전자는 8월 처음으로 온라인을 통해 삼성 갤럭시 언팩(신제품 공개행사)을 열고 ‘갤럭시 노트20’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올해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삼성 갤럭시 언팩(신제품 공개) 2020’ 행사에서 갤럭시 S20을 공개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신제품 공개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9월 ‘갤럭시 Z 폴드2’, 11월 삼성 AI 포럼, 12월 삼성 마이크로 LED TV 등 굵직한 행사 모두 온라인으로 치렀다. 행사는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했고, 언팩 행사의 경우 전략적으로 전 세계가 시청 가능한 시간인 한국 시간 오후 11시(미국 오전 10시·유럽 오후 4시)를 택했다.

SK그룹의 경우 그룹 내부 연례 포럼인 ‘이천포럼’을 온라인 중계 방식으로 전환했다. 경기 이천시 SKMS연구소에서 소규모 패널토론과 강연, 토론 등을 진행하고 이를 온라인 중계하는 식으로 변화시켰다. SK에 따르면 이천포럼 생방송 영상의 최대 동시 접속자 수는 5000여 명. 토론자들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SK 전 계열사 임직원들의 메시지를 보며 실시간으로 소통했고, 이 덕분에 조직원들의 호응도도 예년보다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들의 외부 활동이 제한되는 점을 고려해 온라인 제품 공개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적극 활용하며 비대면 접점을 늘리는 ‘언택트 마케팅’을 강화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LG전자는 9월 IFA 2020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발표자를 홀로그램으로 띄워 신기술을 소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생긴 새로운 트렌드다. LG전자 제공
LG전자는 5월 출시한 전략 스마트폰 LG 벨벳 공개 행사를 ‘온라인 패션쇼’ 콘셉트로 선보였다. SNS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페이스북 등에 업로드한 ‘LG 벨벳 신입사원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총 3편의 시리즈에 LG 벨벳에 대한 LG전자 직원과 소비자들의 평가를 재미있고 솔직하게 담아냈는데 3개 영상 모두 조회수 10만 회를 넘기며 인기를 끌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펜트업(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한 올해 3분기(7∼9월)부터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최고 매출을 달성하며 빠르게 실적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19 적응력이 앞섰기 때문”이라며 “이 밖에도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역량을 바탕으로 각국 수요 증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 비대면 근무, 뉴노멀 되다

대기업 부장급 직원 A 씨는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첫 재택근무를 했을 당시 막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책장에서 먼지 쌓인 노트북을 꺼냈더니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고, 집 안에는 일할 만한 공간도 없었다. 결국 주방 앞 식탁에 자리를 잡았지만 역시 집 안에 머무르는 가족 때문에 업무 집중도는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노트북을 고치러 AS센터를 찾았더니 재택근무를 앞둔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며 “화상회의, 메신저로 하는 업무 지시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던 초반을 생각하면 이제 코로나19 상황에 많이 적응한 상태”라고 말했다.

‘언택트 근무’ 환경을 낯설어했던 기업 내 임직원들도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 분위기다.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불필요한 회의가 줄어드는 등 조직원들의 호응도도 높다. 기업들도 서둘러 비대면 근무 활성화에 따라 사내 보안정책 등을 강화하고, 출퇴근 관리 솔루션을 도입하며, 시스템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적응을 도왔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상당수 기업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 등보다 더 강도 높은 내부 지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며 “한 번의 방심이나 실수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온다는 것을 느꼈고, 더불어 조직원들이 비대면 근무 환경에 대한 적응을 어느 정도 마쳤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주요 기업들은 이달 8일부터 수도권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되기 전부터 강도 높은 방역대책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9일부터 필수 인력을 제외한 임직원 30%를 대상으로 순환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전사적 재택근무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택근무 외에도 회의 인원을 10명 미만으로 제한하고 국내 출장 제한, 회식 금지 조치도 적용하고 있다. LG그룹은 지난달 23일부터 자체적인 3단계 방역 지침을 내려 적용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트윈타워 사옥에 입주한 계열사 임직원의 70%를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또 경남 창원 등 국내 출장도 사실상 금지시킨 상태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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