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에 하얗게 질려도 겨울나무는 춤춘다

글·사진 양양=김동욱 기자

입력 2020-12-05 03:00 수정 2020-12-0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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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코리아]해변-숲길 어우러진 양양
쉬엄쉬엄 달래길 걷다 보면 동해 한눈에
구절양장 구룡령 곳곳 옛 선비들 발자취
한적한 해변 거닐다 카페 들러 커피 한잔


강원 양양과 홍천을 잇는 구룡령 옛길은 한계령, 미시령, 대관령 등에 비해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어 2007년에 명승 29호로 지정됐다. 정상부에 오르면 해발 1000m가 넘는 위치와 깊은 골짜기 때문에 한낮에도 안개와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얼어버리는 상고대를 볼 수 있다.
《최근 몇 년 강원 양양은 국내 ‘서핑 성지’로 떠오른 곳이다. 여름 성수기가 되면 많은 사람이양양 바다를 찾아 서핑을 즐긴다. 당연히 각종 관련 용품을 팔고, 교육을 해주는 곳들이 밀집돼 있다. 하지만 양양을 그 정도로만 안다면 절반만 아는 셈이다. 겨울철 양양이 가진 숨은 매력이 있어서다. 바로 ‘워킹(걷기) 천국’이라는 점이다. 양양은 동해바다를 눈에 품고, 설악산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는해변 길과 숲길이 국내 어느 곳보다 잘 정비돼 있다.》


○ 앞에는 바다, 뒤에는 숲 담은 길
양양 달래길은 10개가 넘는 총 80km 길이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그 중 ‘동해바다로 코스’는 3km 길이로 온 가족이 걷기 알맞다.
양양의 남쪽에 위치한 현남면 하월천리의 달래촌. 이곳에 길이가 80km에 달하는 달래길이 있다. 달래촌은 달 아래 내 천(川)자로 세 개의 골짜기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래촌에서 출발해 삼형제봉까지 닿는 데에는 10개가 넘는 다양한 길이 있다. 그중 ‘동해바다로 코스’는 왕복 3km 정도로 걸어서 1시간 남짓 걸린다.

달래촌 힐링센터 오른쪽 길을 따라 뒷동산을 오르듯 쉬엄쉬엄 걷을 수 있는 동해바다로 코스의 매력은 이름에 드러났듯 동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10분 정도 걷다 보면 키 작은 관목들이 나타나면서 시야가 탁 트이는 지점이 나온다. 동해바다로 코스의 정상부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골짜기 사이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정상부에는 키 작은 나무들이 많다. 2011년 산불로 기존 나무들이 거의 다 타서, 새로 심은 것들이다. 그래선지 산불을 피해 살아남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 10여 그루가 껑충해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바위 위에 걸터앉으면 앞에는 바다, 뒤로는 산이 보인다.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게 풍광을 즐기기에 좋다.


○ 주민들과 함께 걷는 소나무 숲길
양양 중심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모노골산림욕장은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찾는 산책 코스다.
외지인들은 잘 모르지만 양양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산책코스가 있다. 바로 모노골 산림욕장이다. 시내와 가까워 인기가 많은 곳인데,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1, 2시간 정도 걷기에 적당하다. 전체 길이는 4.6km인데 모노골샘터를 기준으로 A코스(1.8km)와 B코스(2.8km)로 나뉜다. 모노골 산림욕장의 분위기만 맛보고 싶다면 모노골샘터에서 출발해 다시 돌아오는 1km 길이의 약식 코스도 있다.

양양 중심지 가까이에 있는 모노골산림욕장은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찾는 산책 코스다.
하이팰리스 아파트 뒤로 난 A코스는 2시간짜리다. 겨울철 거센 바람이 불어도 모노골 산림욕장에 들어서면 빽빽하게 자리 잡은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줘 아늑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숲속을 걷다 보면 풍겨오는 은은한 솔향기도 매력적이다. 가톨릭관동대 뒤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면 길 양옆으로 자란 벚나무들도 볼 수 있다. 봄이 오면 이 길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한겨울에는 한적한 편이다. B코스 입구와 모노골샘터에 주차 공간이 있지만 규모가 작아 추천하지 않는다.


○ 과거 보러 한양 가기 위해 넘던 고갯길
구룡령옛길 정상부에 오르면 해발 1000m가 넘는 위치와 깊은 골짜기 때문에 한낮에도 안개와 수증기가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얼어버리는 상고대를 볼 수 있다.
구룡령(해발 1013m)은 백두대간을 넘을 때 거쳐야 할 여러 고개 중 하나로, 양양과 강원 홍천을 연결해준다. 승용차를 타고 강원도 여행을 즐기는 이들 가운데 홍천군 내면과 양양 서면을 잇는 국도 56호선의 구룡령 구간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잖다. 그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구룡령이란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 또는 ‘용이 구불구불 휘저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간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몇 굽이인지 세어봤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90개 정도였다. 아흔아홉 굽이란 전설이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

구룡령 구간 도로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비포장도로였지만, 1990년대 전체 구간이 모두 포장됐다. 길을 따라 많은 식당과 휴게소가 생겼고,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영동과 영서를 잇는 여러 도로가 생기고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면서 지금은 찾는 이가 많지 않다.


○ 산적들이 출몰하던 구룡령 옛길

구룡령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도보로 이용하던 길이 있었다. 비교적 산세가 평탄해 양양과 강원 고성에 살던 사람들이 한양에 갈 때 주로 이용했던 길이다. 구룡령 옛길을 따라 선비들은 한양으로 과거를 치러 갔고, 상인들은 등짐 진 조랑말을 끌고 양양과 홍천 등을 오갔다. 한계령, 미시령, 대관령 등에 비해 구룡령 옛길은 원형이 잘 보전돼 있다. 2007년 명승 29호로 지정됐을 정도다. 명승으로 지정된 길은 경북 문경의 새재, 죽령 옛길, 토끼비리 등 많지 않다.

구룡령 옛길은 두 갈래다. 옛길을 찾으려면 먼저 구룡령 정상 부근에 있는 백두대간 방문자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입구까지 가야 한다. 이곳에서 1.5km를 걸어가면 옛길 고갯마루(해발 1089m)가 나온다. 여기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 쪽으로 가는 길과 양양군 서면 갈천리로 가는 길로 나뉜다.

이 가운데 갈천리까지 2.8km 구간이 명승으로 지정됐다. 명승으로 지정된 길을 주로 찾는데, 길을 걷는 방법은 두 가지다. 고갯마루에서 내려가거나 반대로 갈천산촌체험학교에서 출발해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갈천산촌체험학교를 들머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어떤 쪽에서 출발하든 왕복하는 데 3, 4시간 걸린다.

갈천산촌체험학교 일대는 예전에 주막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구룡령 고개를 넘으려는 사람들이 구룡령 정상에 머물고 있는 산적들과 맞서기 위해 주막에서 10명이 넘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급제와 부자의 꿈을 안고 주막에서 머물렀을 선비와 상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갈천산촌체험학교에서 출발해 갈천리 계곡을 건너면 본격적인 옛길이 시작된다. 길은 굴곡이 심하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 덕분에 경사는 그리 심하지 않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힘은 덜 든다. 자연 속에 조화롭게 파고든 옛사람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 양양 바다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면
중광정해변의 서피비치. 관광객들은 겨울에는 한적한 해변을 돌아보거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다.
탁 트인 바다 전망이 인상적인 휴휴암은 바다 위에 거북이 형상을 한 넓은 바위가 평상처럼 펼쳐져 있다.
양양에서 가장 큰 항구인 남애항의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는 투명유리 아래로 푸른 바다와 함께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겨울 양양 바다는 북적거리는 여름 바다와 달리 한적하다. 중광정해변의 서피비치에서는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이국적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양양에서 가장 큰 항구인 남애항의 스카이워크전망대에서는 투명유리를 통해 바다와 기암괴석을 발아래 둘 수 있다. 파도와 바람도 생생하다. 바다 바로 앞 암자인 휴휴암의 거북바위에 오르면 방생한 황어 떼와 함께 바다가 좀 더 가까이 느껴진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양양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양양=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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