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임 막히자 지방으로 원정 송년회… ‘바이러스 원정’ 비상

이청아 기자 , 조응형 기자

입력 2020-12-03 03:00 수정 2020-12-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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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거리두기 강화로 식당 일찍 문닫자 지방에 숙소 잡고 원정모임 늘어
‘코로나 탈출’ 여행상품까지 등장
관광지마다 사람들 몰려 북새통
전문가들 “집단감염 우려” 지적



“코로나19 때문에 서울의 식당 예약은 취소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송년회는 강원도에서 하는 거 어때요.”

직장인 김모 씨(42)는 최근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서울에서 ‘천만시민 긴급 멈춤 기간’이 시행돼 서울의 웬만한 식당이 오후 9시 이후 문을 닫아 모임이 어려워지자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서 ‘원정 송년회’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김 씨는 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겨 지인들과 지난달 29일 강원 홍천에 있는 한 별장형 펜션에서 송년 모임을 했다. 김 씨 일행은 늦은 밤까지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다음 날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김 씨는 “한적한 지방으로 가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도 덜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연말을 맞아 지방으로 가서 원정 모임을 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 등에선 모임을 갖기 어려운 수도권을 벗어나 제주도 등 지방에서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이 같은 특수를 노리고 ‘코로나 탈출’ ‘코로나 힐링’이란 이름을 붙인 국내 여행 상품도 많아졌다.

일부 젊은층 사이에서는 술자리가 포함된 송년회 대신에 제주와 강원, 경북 경주 등으로 삼삼오오 떠나는 여행이 인기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송년회를 겸해서 12월에 친구들과 강원도에 갈 계획”이라며 “여행사에서 ‘수도권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지만 지방은 1.5단계라 훨씬 안전하다’며 추천했다”고 말했다.

서울 등 수도권을 피해 지방으로 향하는 ‘모임 행렬’이 이어지면서 유명 관광지에서는 때아닌 북새통이 벌어졌다. 지난주 친구들과 제주 여행을 다녀온 대학원생 김모 씨(25)는 “서울보다 코로나 감염 위험이 작을 것 같아 여행을 갔는데 유명 관광지는 사진 찍기도 힘들 만큼 사람들이 붐볐다”고 말했다. 주말에 지인들과 경주에 다녀온 직장인 A 씨(27)도 “경주 ‘황리단길’(황남동+경리단길) 식당과 카페는 거의 만석이어서 띄워 앉기가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중장년층들에겐 비교적 날씨가 포근한 남부 지역으로 골프 모임을 떠나는 게 인기 있다. 직장인 이모 씨(53)는 돌아오는 주말에 동창들과 함께 전라도로 연말 동창회를 겸해 골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서울에 사는 조모 씨(59)는 제주도로 ‘시즌 오프 라운딩’을 계획했다가 골프장 예약이 거의 다 차서 대기까지 걸어야 했다고 한다.

제주의 한 골프장 관계자는 “12월 예약은 거의 다 찼다. 연말에 이 정도로 예약이 몰리는 건 처음 본다”고 전했다. 지난달 대학 동문들이 경기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개최한 모임은 최근 30여 명이 확진되는 집단감염으로 번졌다.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은 “연말에 지방 원정 송년회를 하는 것은 전국으로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바이러스 원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빈발하는 집단감염은 대부분 지인이나 가족 모임 같은 10인 이하 소규모 모임에서 시작됐다. 2일 기준 관련 확진자가 68명까지 늘어난 ‘충북 김장 모임 집단감염’도 일가친척 7명이 모인 자리가 발단이 됐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거리 두기의 취지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이지 말라’는 게 본질”이라며 “지방 여행을 하면 여러 명이 함께 이동하거나 같은 숙소에 머물게 돼 밀접 접촉 시간이 길어지고 자연히 감염 확률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청아 clearlee@donga.com·조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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