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려하게 흘러가다 강하게 몰아치는… 이 작품의 음악은 진한 빨간색”

김기윤 기자

입력 2020-12-03 03:00 수정 2020-1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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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믿고 듣는 음악감독 김문정
2005년 첫 지휘봉 잡은 작품
올핸 류정한-조승우-홍광호 출연
“나태하지 않게 고삐 죄는게 관건”


김문정 감독은 “뮤지컬 배우는 역설적으로 노래하려고 애쓰지 않아야 한다. 때론 자기 실력을 살짝 감추더라도 ‘이야기로 존재하는 배우’가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뮤지컬에서 배우의 목소리가 한 척의 배라면, 음악은 바다와 같다.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배를 따스하게 품다가도 어느새 거친 파도 속으로 몰아넣어 격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 변덕스러운 바다를 지나 목적지까지 맛깔나게 항해하는 건 배우의 몫. 뮤지컬 음악감독은 선원들을 유혹하는 신화 속 요정 세이렌처럼, 때론 포세이돈처럼 이 바다를 지휘한다. 객석에선 잘 보이지 않는 ‘피트’에 서있는 그를 오케스트라, 배우들은 끝없이 살핀다.

한국 뮤지컬의 바다를 20여 년간 지켜온 ‘믿고 듣는’ 김문정 음악감독(49)이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로 돌아왔다. 이 작품의 지휘봉을 처음 잡은 건 2005년. 그는 “매 공연, 연습 때마다 인생 교훈을 하나씩 배워 가는 작품이다”라며 “익숙한 연주가 나태함으로 보이지 않도록 고삐를 조이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이어 “많은 남자 배우들이 ‘라만차’를 ‘최애작(최고 애정하는 작품)’으로 꼽을 만큼 남심(男心)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고 덧붙였다.

‘맨 오브 라만차’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각색한 작품으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백발 기사의 여정을 그렸다. 가슴 뛰게 하는 노랫말, 스페인 황야를 옮겨 놓은 듯한 무대, 감동적 줄거리가 어우러진 수작으로 꼽힌다. 플라멩코, 도입부 노래인 멜리스마(한 음절의 가사에 여러 음정이 있는 장식적인 노래), 기타의 이국적 선율이 특징이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의 음악은 진한 빨간색이다. 유려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리듬을 잘게 쪼개고, 콘트라스트(대조)를 강하게 몰아친다. 드라마를 윤기 있게 만드는 음악적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 배우가 돈키호테 역으로 출연한다.

“세 사람 모두 이 작품에 갖는 애정이 남달라요. 연습실에만 가도 보입니다. 류정한 씨는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요. 공연을 거듭할수록 생기는 저력과 여유랄까요. 조승우 씨는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가졌죠. 극 중 역할 변신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매번 놀랍니다. 홍광호 씨의 ‘꿀성대’가 노래하는 대표 넘버 ‘임파서블 드림’은 말할 것도 없죠.”

20년간 그를 거쳐 간 스타는 수없이 많다. 그는 이들의 목소리만 듣고도 그날 컨디션을 파악해 공연 시작 전까지 음악을 조율한다. 그날그날 처방을 내리는 ‘무대 위 의사’ 같다. 그는 “목 상태가 별로일 땐 곡을 짧게 끊기도 하고, 다음 마디로 템포를 빠르게 넘긴다. 소리가 큰 관악기를 써서 약점을 보완할 때도 있다”고 했다. 배우들도 ‘김문정’이라면 더 편안히 노래하며 무대에서 뛰놀 수 있다. 김준수도 출연작의 80% 이상을 그와 함께 했으며, 옥주현에게 김 감독은 ‘애인’이자 ‘선생님’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을 못 할 때 최정원 배우가 우스갯소리로 ‘너랑 내가 작품 공백기가 있는 걸 보면 진짜 큰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국민이 힘든 시기, ‘라만차’의 선율로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18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6만∼1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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