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사위로 자유를 외치다

김재희 기자

입력 2020-12-02 03:00 수정 2020-12-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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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춤을 추었다’ 레반 아킨 감독
정치적 항변 춤으로 승화시켜
칸 영화제서 15분간 기립박수


조지아의 첫 LGBTQ(성적소수자) 장편영화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레반 아킨 감독(41·사진)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부모가 조지아 국적으로, 스웨덴에서 자란 그는 2013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극우 성향의 정교회 단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접했다.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한 아킨 감독은 “동영상을 본 뒤 충격과 부끄러움이 함께 찾아왔다”고 했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란 의문을 가졌고, 답을 찾기 위해 2016년 조지아로 떠났습니다.”

지난달 25일 국내 개봉된 영화는 보수적인 조지아 국립무용단 소속 남성무용수 ‘메라비’(레반 겔바키아니)와 ‘이라클리’(바치 발리시빌리) 간 사랑을 그렸다. 둘은 강하게 끌리지만 주변의 혐오와 편견에 무너진다. 영화는 지난해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초연돼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신인 배우 겔바키아니는 영화의 메시지를 춤을 통해 아름답고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전통춤을 강요하는 무용단의 규율에 맞서 오디션에서 보란 듯 자유로운 몸짓을 펼치는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혼을 담은 춤사위로 겔바키아니는 ‘스웨덴의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굴드바게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주 어려 보이지만 때론 늙어 보이기도 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얼굴에 매료됐어요. 마지막 댄스 장면은 몇몇 스텝을 제외하곤 전부 겔바키아니의 즉흥적인 안무였어요. 그의 팔과 허리는 여성적 움직임과 남성적 움직임을 오가고, 조지아 전통춤도 그의 해석에 따라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오갑니다.”

지난해 11월 트빌리시에서의 영화 상영을 앞두고 정교회의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영화는 단 3일간 상영됐고 상영관에는 경찰이 배치됐다. 티켓 6000장은 10분여 만에 매진됐다.

“아직도 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지만 전 괜찮습니다. 조지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 수많은 국가의 젊은이들이 보낸 응원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됐거든요. 이들이 각 국가의 희망이자 미래입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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