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보다 사회적 가치… 재계 ‘ESG 경영’ 속도

유근형 기자

입력 2020-11-30 03:00 수정 2020-1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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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국내 첫 RE100 가입… 전력 100% 신재생에너지 조달
삼성전자, 유망 스타트업 지원… 현대차, 수소전기차 판매 확대
코로나에도 ‘착한 투자’ 이어져… 지속가능한 경영의 필수 조건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통칭하는 ‘ESG’가 재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건전한 지배구조 속에서 환경을 위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경영을 수행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주로 경제적 가치와 재무적 정보에 초점을 두고 기업을 평가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라는 비재무적 정보를 고려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ESG 관련 채권 발행이 급증하고 석탄 투자 중단을 선언하는 금융사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속가능경영의 필수요소 ‘ESG’



SK그룹은 ESG 경영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SK그룹은 2일 국내 기업 최초로 ‘재생에너지 100%(RE1000)’에 가입을 신청하는 등 최근 ‘ESG 경영’을 통한 근본적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다는 선언이다. 영국 런던 소재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시작했고, 구글 애플 GM 이케아 등 전 세계 263개 기업이 동참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9월 전 직원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ESG를 기업 경영의 새로운 축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최 회장은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에 연계된 실적,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국내 유망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C랩 아웃사이드’를 운영하며 ESG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부터 5년 동안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외부 스타트업 300개를 육성하고, 사내 스타트업 200개를 지원할 계획이다. ‘C랩 아웃사이드’에 선발된 회사들은 삼성 서울R&D캠퍼스에 마련된 전용 공간에 1년간 무상 입주하고, 임직원 식당, 출퇴근 셔틀버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팀당 1년간 최대 1억 원의 사업 지원을 받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도 내연기관이 가진 환경적 한계를 넘어 친환경차 시장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을 통해 ESG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2025 전략’을 발표하면서 2025년까지 수소전기차 연간 판매량을 11만 대로 늘리고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 연간 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기업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ESG경영으로 인정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구광모 LG 대표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협회가 발표한 ‘2020 글로벌 지속가능리더 100’에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선정됐다. 구 대표를 비롯해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등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과 함께 선정됐다.


ESG 내실화해야 실제 경영에 도움


전문가들은 ESG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여러 가지 ESG 활동을 수행한다거나, ESG 관련 점수가 높다고 해서 기업의 성과와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개하는 국내 기업이 점점 늘고 있지만 정작 보고서에 구체적인 ESG 도달 목표를 제시하고 매년 얼마나 진척을 이뤘는지를 제대로 공개하는 곳은 많지 않다는 게 산업계의 일반적 평가다. 보고서 발간 자체가 목표인 기업들의 인식 수준이 크게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ESG 점수가 높은 기업이 성과가 좋은 게 아니라 원래 뛰어난 기업이 ESG 점수도 높고 성과가 좋을 수도 있다”며 “생색내기 수준을 넘어서려면 그룹 또는 기업의 전체 경영 전략에 ESG를 녹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SG 경영이 실제 부가가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능동성이 필수적이라는 게 경영계의 중론이다. ESG를 단순한 규범 수준을 넘어 사업의 의사결정을 바꿀 정도의 요소로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기업 최고위 임원들의 경영전략회의에서 ESG를 다루는지 등이 중요하다는 것.

구체적인 목표 제시도 ESG 경영이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예컨대 글로벌 식품회사 네슬레는 십수 년 전부터 설탕과 나트륨 및 포화지방을 식품에서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그 진행 결과를 매년 발표해가며 목표 달성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연간 약 100억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SG 투자 코로나 악재 속에서도 확장세


ESG는 자본시장에서도 핵심적 투자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4월 유엔이 투자 결정 과정에서 ESG 요소를 반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PRI(책임투자원칙)를 반영한 이래 지속적으로 커져왔다. ‘사회책임투자’, ‘착한 투자’ 정도로 여겨졌던 ESG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며 더욱 강조되는 형국이다. 국민연금은 책임투자형 국내주식 위탁운용에 ESG 평가를 강화한 벤치마크 지수를 연말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2022년까지 ESG 투자를 전체 기금 자산의 절반 수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그린 뉴딜과 디지털 뉴딜 모두 ESG와 연관성이 높아 최근 관련 채권 발행도 활발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지만 ESG 투자는 늘어나고 있다”며 “ESG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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