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유의 여신상’이 센강에 있을까

뉴스1

입력 2020-11-26 15:59 수정 2020-11-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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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라파예트 광장의 라파예트 장군상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누구할 것 없이 코로나19로 인해 영화를 자주 접하는 중이다. 넷플릭스든 영화 채널에서든.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그중 하나는 역사적 사건이나 실화,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전기 영화도 여기에 들어간다. 이러면 실패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이와 관련 내가 가장 최근에 흥미진진하게 본 영화는 ‘올 더 머니’와 ‘언노운 솔저’다. ‘올 더 머니’는 석유 부호 폴 게티의 손자 납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름만 알고 있다가 어렴풋하게나마 폴 게티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스토리가 펼쳐지는 영화의 배경이다. 가보지 않은 낯선 이국적 풍광이나 내가 가본 도시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선호한다. 이런 영화들은 안주하려는 나를 자극하고 흔들어 깨운다. ‘아, 저런 곳이 다 있구나’ ‘저곳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나도 저 다리를 걸어보았는데…’

유명 배우도 출연하지 않는데 제목과 배경만 보고 선택해 결국 두 번씩 본 영화가 있다. ‘로스트 인 파리’(Lost in Paris). 내용도 제목과 일치한다.

캐나다 북극 지방에 사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여성이 파리에 사는 혼자된 이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캐나다 조카는 파리의 이모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모와 조카가 여러 번 엇갈리다가 가까스로 통화가 된다.

“이모, 지금 어디 계세요?”

“잠깐, 여기가 어디더라.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나 뉴욕에 와 있어.”

조카는 무작정 택시를 타고 “이모가 뉴욕에 있다고 하니 거기로 가 달라”고 한다. 택시 기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자유의 여신상’으로 데려다준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두 사람으로 극적으로 만난다.


에펠이 설계한 ‘자유의 여신상’

센강에는 37개의 다리가 있다. 센강의 흐름과 센강의 다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에펠탑이다.

에펠탑 위에 올라가면,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한강의 유장한 흐름이 보이는 것처럼 파리 시내를 동서로 굽이쳐 흐르는 센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센강을 따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세 번째 다리 중간쯤에 뭔가 삐쭉 솟아있는 게 보인다.

그레넬 교의 ‘자유의 여신상’이다. 그레넬 교 아래에 길쭉한 섬이 누워있고, 그 섬에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자유의 여신상’은 파리를 찾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왜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이곳에 있지? 뉴욕을 처음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록펠러센터 전망대, 9·11 테러 추모비, 하이 라인, 리버티섬의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곳을 방문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대표 상징물이다. 그런데 이 ‘자유의 여신상’이 구스타브 에펠의 구조설계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시에 기증한 것이다. 도대체, 왜 프랑스는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에 보내기로 했을까.

그 이유는 1775년 미국 독립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처음에는 관망하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정의감에 넘치는 열아홉 귀족 청년 라파예트(Lafayette 1757~1834)는 친구들과 대서양을 건넌다. 라파예트는 대륙군을 찾아가 미국 독립 지지를 선언한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대륙군 지도자들은 프랑스 청년에 감동하여 최고의 대우를 한다. 라파예트의 영웅적인 행동이 프랑스를 움직였다. 프랑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신생국 미국을 돕기로 하고 군대를 파병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한다. 대륙군은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독립전쟁에서 승리한다.

“우리는 미국의 자유를 위해 피를 흘렸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꿈틀거린다. 프랑스는 왜 재정적 출혈이 불가피한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기로 했을까. 100년 전쟁을 비롯해 프랑스와 영국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다. 근인(近因)은 유럽대륙에서 벌어진 7년전쟁(1756~1763)이었다. 7년전쟁은 독일 슐레지엔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유럽 여러 나라가 편을 나눠 벌인 전쟁이다. 18세기의 세계대전으로 불리는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영국에게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적(敵)의 적은 동지라 했던가. 프랑스는 원수를 갚으려 적(敵)의 적을 돕기로 한 것이다.

민병대가 중심이 된 대륙군은 프랑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으면 정규군인 영국군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전쟁을 지원한 프랑스의 후유증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루이 16세 정부의 재정 적자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는 안이하게 증세(增稅) 정책을 펴다가 부르주아 계급의 거센 저항을 받는다. 이게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다.

프랑스인은 미국의 자유를 찾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충만했다.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조각가는 미국 독립 100주년을 앞두고 프랑스·미국의 우정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해 기증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디자인이 끝난 상황에서 구조설계를 맡은 엔지니어가 제작 도중에 사망하면서 동상 제작은 중단될 위기에 처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르톨디는 철교 설계로 명성을 얻은 에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에펠은 바르톨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펠이 기존에 완성한 가론강 철교, 두로강 철교, 가라비 철교 등에 비하면 난이도 면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펠은 네 개의 철탑 다리로 탑의 몸체에 해당하는 구리 외관을 지탱하는 구조를 고안해냈다. 에펠은 르발루아 공장에서 조립식으로 여신상 철골 구조를 완성한 뒤에 기차로 파리까지 싣고 갔다. 다시 센강을 통해 대서양으로 나간 뒤 선박에 실어 뉴욕으로 실어날랐다. 자유의 여신상은 높이만 46m에 이른다.”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예술인 편)

뉴욕시에 ‘자유의 여신상’을 기증한 뒤 바르톨디와 에펠은 여신상을 하나 더 만든다. 이를 1885년 파리 시에 기증한다. 같은 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의 그것과 일란성 쌍둥이다.

그레넬 교의 ‘자유의 여신상’을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유의 횃불을 든 여신상을 뒤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여신(女神)의 시선을 일직선으로 끝까지 이으면 대서양을 지나 뉴욕 앞바다 리버티섬의 여신상에 이른다. ‘자유에의 열망’으로 태어난 쌍둥이 여동생은 지금 센강에서 멀고 먼 대양 건너 리버티섬의 쌍둥이 언니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계단을 따라 섬으로 내려가 여신상을 치켜보며 감상하는 것이다. 섬에서 동상 기단을 한번 빙 둘러보면 영화 ‘로스트 인 파리’의 장면들이 잇따라 오버랩된다. ‘가까이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고 말한 어느 시인처럼 자세히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신의 몸체가 금이 간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음새다. 일련번호에 따라 조각들을 차례대로 이어붙여 동상이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 DC의 대통령 집무실 백악관(White House)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녹색 잔디가 깔린 공원이 있다. 라파예트 스퀘어다. 이 라파예트 공원에는 라파예트 기념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미국 50개 주에는 라파예트 이름을 붙인 도로, 공원, 공공건물이 널려 있다. 온통 라파예트다! 미국은 자유를 찾게 해준 프랑스를 영원히 잊지 않으리.

‘로스트 인 파리’에서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방황하다 우연히 찾아간 곳이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이 영화로 인해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쌍둥이 여동생이 센강에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여신상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연결된 길고 긴 역사적 함의를 상기시킨다. 2차세계대전 때 미국의 젊은이들이 노르망디와 프랑스 전선에서 왜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렸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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